유한회사는 회계감사의 무풍지대여서 회계의 투명성과 관련한 갖가지 의혹의 눈초리와 비판을 받으며 사세와 규모를 키워왔다. 돈 잘버는 외국계 회사가 대부분 유한회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그러한 가운데 유한회사에 대한 외부감사 시행 법안이 방치되고 있어 정부와 정치권의 회계투명성 제고 의지가 의심받고 있다.
유한회사는 지난 2011년 상법 개정으로 관련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경제적 실질이 주식회사와 유사해졌다. 이에 따라 이젠 주식회사처럼 외부감사를 받아 회계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싱가포르, 호주 등 주요 국가들의 경우 소규모(자산, 종업원 수 등) 법인을 제외한 모든 유한회사들을 외부 감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한국의 규정이 지나치게 허술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은 지난해 1월 유한회사를 외부감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은 ‘외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금융위원회 역시 2013년에 이어 지난해 10월 외감법 전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 등 회계투명성 강화 의지를 보였다.
김태호 의원은 “회사의 태생적 특성은 인정되어야 하고 그에 맞는 회계제도가 적용되어야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유한회사와 대형 비상장 주식회사에 대한 회계감독 강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김 의원의 법안은 국회 정무위에서 깊은 수면에 들어갔고 금융위원회 역시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정부와 국회 모두 공평한 세원 확보와 회계 투명성 제고를 위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을 받고 있다.
■ 유한회사 급증... 자산 1천억원 이상인 회사 537개로 75.5% 급증
금융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2013년 기준 국내 유한회사 수는 총 2만1336개사로 2010년 1만6998개사 대비 25.5%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외감대상(주식회사) 법인이 1만8598개사에서 2만2331개사로 20.1%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증가세다.
특히 자산규모 1천억원을 넘는 회사도 2010년 306개사에서 2013년 537개사로 무려 75.5%나 증가했고 1조원을 넘는 회사만도 7~8개사에 달한다.
■ 자산 100억이상 유한회사 증가율 주식회사의 4배
여기서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이 기간 중 외부 감사대상 기준인 자산 100억원(2014년 9월 120억원으로 상향됨)이상인 유한회사의 증가율이 외감법인(주식회사)의 증가율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2013년 기준 외감대상 법인은 2만2231개사로 2010년보다 20.1% 증가했다. 반면 유한회사는 1778개사에서 2967개사로 66.9%나 급증, 무려 4.3배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연도별 증가율로 살펴봐도 유한회사의 증가속도가 훨씬 가파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유한회사의 법적·회계제도적인 특수성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한회사는 소수의 사원이 자신이 출자한 금액만큼 책임을 지는 구조여서 주식회사와 달리 법적으로 외부 감사나 불특정 다수에게 회사 내용을 공시할 의무가 없다. 이로 인해 경영실적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회사들이 그 방패막이로 유한회사를 택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
국내 진출한 대부분의 외국계 기업들은 외부감사를 받을 필요가 없는 유한회사를 선호하고 있다.
실제로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의 국내법인 대부분은 유한회사 형태를 취하고 있다. MS, 구글, 애플, HP, 코카콜라, 맥도날드,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피자헛 등은 물론 최근 국내 진출한 이케아와 루이뷔통, 샤넬 등 명품 업체들 역시 유한회사다.
이에 더해 지난 2011년 4월 상법개정으로 유한회사의 ‘사원수와 지분양도’ 관련 제한이 폐지돼 주식회사와 경제적 실질이 상당부분 유사해짐에 따라, 주식회사였던 회사들마저 유한회사로 회사 형태를 변경하고 있는 추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외부감사 회피 등을 위해 2007년부터 2012년까지 HP, 마이크로소프트, 루이뷔통 등 약 85개 외감대상 주식회사가 유한회사로 회사 형태를 바꿨다.
■ 외부감사, 재무 상황·법인세 납부 실적 등 관련정보 ‘깜깜이’...“외부 감시 필요”
이와 같은 이유로 대형 유한회사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주식회사와 달리 외부 회계감사나 회사 경영실적 등 주요 사항을 공시할 의무가 없다보니 회계의 투명성 확보가 쉽지 않아 문제다.
외부에서 회사를 들여다 볼 사회적 감시망이 결여되다보니 회계가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울러 매출과 손익, 각종 세액공제 및 법인세 납부, 배당·로열티 같은 본사와의 자금 거래 등 재무관련 정보가 일반인들에는 베일에 가려지게 된다.
이처럼 외부 감시 기능이 제한될 경우 분식회계나 수익규모 은폐가 용이해져 탈세의 수단으로까지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전문들의 지적이다.
유한회사의 경우 기업의 재무·세무 정보를 유일하게 국세청만 접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 회사의 자금거래나 각종 세액공제 등 세무관련 항목들을 국세청 한곳의 감시망으로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느냐이다.
국세청의 세무정보 독점은 기업과 세무공무원의 유착 개연성이 높아, 세무비리로 이어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심지어 국세청은 이들 유한회사에 대해 실시한 연도별 세무조사 통계도 작성치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법인의 규모별, 개인사업자 등의 세무조사 통계는 작성해 발표하고 있지만 주식회사, 유한회사 등 회사 형태별 통계는 작성치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한회사와 주식회사 간 법적·제도적 불공평으로 인한 규제차익 발생 등 주식회사와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는 현행 외감법은 그 스스로 회계 사각지대를 양성하는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법률 및 금융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들 유한회사가 국내 소비자를 상대로 영업활동을 영위하며 외형과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고용, 사회공헌 활동 등을 통해 우리 경제에는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역할 등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파악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잠자는 외감법 개정 법안...“불공정한 게임룰 국가가 방관”
이처럼 유한회사를 외감대상에 포함시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안은 언제 처리될지 요원한 상태다.
김태호 의원실 김창현 비서관은 “유한회사 등을 외감법 대상에 포함시키는 외감법 개정안을 지난해 1월 발의하고, 2월 정무위원회 전문위원의 긍정적 심사의견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척이 되질 않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전했다.
해당 법안을 심사했던 김재환 국회 입법조사관은 “해당 법안이 정무위에 계류 중인 것은 맞다”며 “시급한 법안들이 산적해 있고, 정부 입법안도 제출되지 않고 있어 해당 법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늦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정황으로 볼 때 정부나 국회 모두 외감법 개정안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예상되는 문제점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시간이 필요해 공청회, 토론회 등을 거쳐 지난해 입법예고한 상태”라며 “올해 안에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며 조속한 입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은 “규모가 큰 유한회사는 그 수준에 상응하는 회계제도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 외감법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만들고 있다”며 “이같은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국가가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조속한 외감법 개정을 주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