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대통령도 진짜 모범납세자도 없는 '납세자의 날'

매년 납세자의 날(3월3일)은 성실한 세금 납부로 국가경제에 기여한 납세자들에게 국가 차원의 감사인사를 전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국세청 개청기념일이기도 하다.

학교와 기업에서는 개교기념일, 창립기념일 마다 학교 또는 기업의 설립 의미와 역사 등을 되짚는 조촐한 행사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부 기관 중 개청기념일, 가장 큰 행사를 하는 사실상 유일한 기관인 국세청은 이날을 세금을 납부한 모든 납세자에게 감사를 전하는 행사로 하루를 채운다. 납세자가 있기에 국세청이 존재하듯 국세청 개청기념일의 주인공은 납세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매년 수백명의 모범납세자를 선정해 훈포장을 수여한다.

대형 행사장에서 성대한 기념식(주관은 기획재정부)도 진행하고, 전국 각지에 소재한 일선 세무서 자체적으로 지역의 모범납세자들과 어우러지는 행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작금의 납세자의 날 행사는 '획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종의 '전시행정'으로 전락, 매년 똑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행사장 단상에 올라 훈포장을 수여받고, 일선 세무서에 초대되어 일일명예세무서장으로 활동하는 모범납세자들은 수 백명이다. 그러나 이들이 진짜 성실한 납세로 국가경제에 기여한 모범납세자들인지 여부는 국민들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진짜 성실납세자들, 소위 털어서 먼지가 나오지 않은 그런 성실납세자들은 오히려 납세자의 날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철저히 커튼 뒤에 가려져 있다.

□ '붕어빵틀'로 찍어낸 납세자의 날 행사 = 매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거행되는 납세자의 날 행사의 주관은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그리고 관세청이다.

납세자의 날 행사는 매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굳이 예년과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단상에 올라 훈포장을 수여받는 모범납세자들과 치사와 훈포장 수여자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얼굴'만 바뀌는 수준이다.

국민의례에 이은 경제부총리의 치사, 모범납세자 시상 및 기념촬영에 이어진 경제부총리의 짧은 마무리 코멘트,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후다닥 끝나버린다.

초등학교 조회시간에 펼쳐지는 풍경과도 그닥 다를바가 없다.

일선 세무서들이 3일 또는 4일 이틀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납세자의 날 행사는 그야말로 '붕어빵틀'에서 찍혀나오는 행사나 다름없다.

모든 세무서들이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패턴으로 행사를 진행한다. 모범납세자 중 한 명을 골라 일일명예세무서장 체험을 하도록 배려하고 (능력이 되는 세무서들은)유명 연예인을 불러다가 일일명예민원봉사실장 자리에 앉혀 세무서를 방문한 납세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십 수년 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올해의 경우 지난해 모범납세자로 선정된 유명 연예인의 탈세문제가 불거지면서 일선 세무서에 연예인 초청을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와 연예인이 초청된 세무서는 극히 드물었다는 것이 예년과는 다른 부분이었다.

일일명예세무서장이 하는 일은 미리 짜놓은 각본에 따라 세무서장 자리에 앉아 기념촬영을 한 후 결제서류 1~2건에 사인을 하고 일어나는 것이 끝이다. 일일명예민원봉사실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연예인이라면 세무서를 방문한 납세자들의 사인요청을 들어주고, 수많은 언론사의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일이 전부다.

33번째 내방 납세자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등 자체적으로 만든 독특한 이벤트를 가미하는 세무서들도 있지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꾸준히 흘러나왔던 관행에 젖은 '요식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세무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올해 모범납세자로 선정된 한 납세자는 "사실 세금을 내고 싶어서 내는 사람이 어디있느냐"라며 "왜 선정된지도 모른 채 불러다가 상만 받고 가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오히려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투명하게 알려주는 것이 더 고마울 것"이라고 말했다.

□ "대통령님은 어디 계신가요?" = 납세자의 날 행사는 모범납세자 선정기준의 불투명성과 요식행위 수준의 행사 등으로 권위가 떨어진지 오래이지만 전문가들이 더 문제시 삼는 부분은 납세자의 날 행사에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참석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총 49번의 납세자의 날 행사 역사상 대통령이 참석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중요성이 높은 대내외 행사에 대통령이 일정상 참석하지 못한다면 국무총리가 대신해 참석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납세자의 날 행사에는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의 불참은 관행이 됐다.

정작 납세자들에게 가장 고마운 마음을 전달해야 할 대통령은 특정 단체 등이 주관하는 크고 작은 행사에 얼굴을 내비치면서도 대국민을 상대로 고개를 숙여 감사해야 할 날인 납세자의 날 행사는 아무런 이유 없이 참석하지 않고 있다. 올해는 아예 중동 4개국 순방을 떠나 버렸다.
 
납세자의 날 행사가 한창이던 지난 3일 이완구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 이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종교계 관계자들을 만났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무관심'이 납세자의 날 권위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민의 대부분이 납세자인데 대통령이 당연히 '납세자의 날' 행사에 참석해서 고맙다고 해야 한다"며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과 납세의 의무가 가장 중요하다. 대통령이 국군의 날 행사에는 매년 가면서 납세자의 날 행사에 가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도 "정부가 납세자들로부터 세금을 받아서 쓰는데 납세자의 날 행사에 와서 대통령이 절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라며 "대통령이 납세자의 날에 참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국민들에게 세금만 요구할 뿐이지 감사할 줄 모르는 정부"라며 "대통령이 납세자의 날을 참석하지 못한 경우에는 정부 대표로 국무총리라도 와야 한다"고 밝혔다.

□ 진짜 모범납세자들은 숨기는(?) 이상한 국세청 = 모범납세자 선정과 관련해 또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국세청이 실제로 철저한 검증을 통해 가려낸 '진짜 모범납세자'들은 대내외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조사모범납세자'다.

조사모범납세자란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진행한 뒤 성실한 세금납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직접 확인된 기업들을 선정해 포상을 하는 것으로 매 분기별로 선정한다.

이들은 세무조사 선정 대상에서 3~5년 동안 제외되는, 엄청난 혜택이 주어진다. 다만 외형 3000억원 이상의 기업은 혜택에서 제외되는 것은 일반 모범납세자와 같다.

조사모범납세자들이야 말로 큰 정부 포상을 수여하고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려 성실납세환경 조성의 표본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국세청은 이들을 꽁꽁 숨겨주고(?) 있다.

조사모범납세자들이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공개하기 꺼려한다는 것이 이유다. 해당 기업이 자체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괜찮지만 국세청이 먼저 나서 홍보하기는 힘들다는 논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얼마의 세금을 납부해 국가경제에 기여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수 백명의 모범납세자들은 대내외에 공개하고 납세액 규모를 떠나 진짜 성실납세한 납세자들은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세청의 '성실납세환경 조성'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사모범납세자와 대비되는 부분은 또 있다. 3~4년 전부터 국세청이 선발해 오고 있는 '아름다운 납세자'이다.

국세청장은 매년 아름다운 납세자들을 국세청사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이들의 사진을 조세박물관에 전시하는 등 융숭한 대접을 하고 있다.

문제는 아름다운 납세자 또한 선정기준 자체도 매우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얼마의 세금을 냈는지 보다는 어떻게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는지가 홍보의 초점이다.

일반모범납세자와 조사모범납세자, 그리고 아름다운 납세자. 누구를 더 우대하고 감싸야 하는 지 답은 분명하다. 정부가, 국세청이 그 답이 아닌 다른 답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