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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납세자의 날, '패러다임' 바꾸자

②"차라리 상 안받겠다"…정부 포상 거부하는 모범납세자들

  • 보도 : 2015.03.10 09:31
  • 수정 : 2015.03.10 09:31

 

◆…"근면하고 성실하면 OK?" = 정부가 공개한 제49회 납세자의 날 모범납세자 수상자 일부의 공적요지.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A사는 근면과 성실을 신조로 투철한 기업윤리 원칙을 준수하고 법인세를 성실히 신고납부했다는 이유로 상을 받았지만 납부세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성실납세로 세수증대에 기여한 공이 큰 B사 역시 납부세액이 얼마인지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매년 납세자의 날(3월3일) 마다 수 백명의 모범납세자들을 뽑아 올려 훈포장 및 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국민의 신성한 4대 의무 중 하나인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는 의미에서 훈포장과 함께 크고 작은 혜택이 주어지는 만큼 개인과 기업에는 크나큰 영예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사정이 조금 다르다.

가장 먼저 매년 반복 선정되는 수 백명의 모범납세자 전원이 과연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정부로부터 훈포장을 수여받을 자격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하다. 투명성 자체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그들의 세금납부실적 등이 원천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국민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마는 모범납세자 명단과 정부가 작성한 사실상의 획일적 공적내용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모범납세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납세자의 날이 주목받는 것은 정부가 유명 연예인을 모범납세자로 선정해 이들에게 포상하고, 그들을 국세행정 홍보대사로 위촉한다는 사실 뿐이다.

지난 십 수년 동안 이 패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 연예인들 또한 모범적인 납세를 했는지 알 수도 없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선정한 모범납세 연예인이 대형 탈세사건에 휘말려 망신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겠는가.

또 한가지 모범납세자들에게 부여되는 혜택의 '형평성'이 무너졌다는 부분이다. 정부 포상의 최대 혜택이라 할 수 있는 일정기간 동안의 세무조사 유예 혜택은 특정 계층에게만 주어진다. 많은 돈을 벌어 많은 세금을 냈어도 '대기업'이면 이 혜택은 주어지지 않는다.

일정 규모 이하 중소기업 또는 중견기업만이 이 혜택을 누릴 수가 있다.

과연 누가 모범납세자로 선정되고 훈포장은 물론 혜택을 받아야 하는가.

답이 너무도 뻔한 이 질문에 정부는 엉뚱한 답만을 내놓고 있다.

 

◆…"세월호 성금·한류 확산 기여한 우리는 모범납세자" = 연예인 송승헌·윤아 씨가 납세자의 날 행사에서 모범납세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송 씨는 세월호 유족에게 성금을 냈다는 이유로 윤아 씨는 한류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모범납세자로 선정됐지만 납부세액 등에 대해선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 훈포장 '거부'하는 납세자들, 왜? = 수 년전부터 납세자의 날 훈포장 및 표창 후보자로 추천된 납세자들 중 일부가 수상을 거부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국세청 안팎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인식되어 왔다.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원하는 수준의 '훈격'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그리고 세무조사 유예 혜택의 폐지(2011년 이후)로 훈포장을 받아봐야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하는 경우라는 전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콘도요금, 의료비 할인 등 모범납세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그리 필요성이 없다. 그나마 도움이 될 만한(?) 혜택이었던 KTX 요금 할인제도는 지난 1월1일 아예 폐지됐다.

훈포장 및 표창에 동반된 최고의 혜택이었던 일정기간 동안의 세무조사 유예 혜택은 지난 2011년 외형 5000억원 이상 법인에 대해서는 폐지됐다. 현재 이 기준은 외형 3000억원 이상 법인까지 하향됐다. 이 기준 이하의 중견 및 중소기업이 아닌 이상 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세금을 10원짜리 한 장까지 성실히 납부해도 정부가 정해놓은 '대기업' 기준에 부합하면 혜택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 기업인은 이와 관련해 "공적조서 등 서류를 작성해 제출하는 불편함만 있을 뿐 (세무조사 유예)혜택도 없는 상을 받아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상을 받는다고 매출이 오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기업 입장에서는 득이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명예를 따진다면 훈격이라도 높아야 한다. 국무총리 표창 이상이 아니라면 차라리 받지 않는 것이 낫다"고 덧붙였다. 모범납세자에게 주어지는 국세청장 표창 이하 정부 포상의 권위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세금 많이 내면 오히려 '역차별' = 일각에서는 모범납세자 선정의 기준을 '고액납세'로만 맞출 경우 대기업들의 독무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이전까지 훈장(금탑.은탑.동탑.철탑.석탑산업훈장) 수상자 명단의 대부분은 대기업들이 채워왔다. 트렌드에 변화가 가해진 것은 2012년 제46회 납세자의 날 부터였다.

당시 훈장 수상자 명단에서 대기업의 이름은 사라졌다. 모범납세자 선정과정에서 정부의 정책적 목적(일자리 창출, 중소.중견기업 활성화)이 가미되면서 일어난 변화였다. 많은 세금을 낸 대기업들은 자연스럽게 아무런 혜택도 없는 '고액납세의 탑' 수상자 자리로 밀려났다.

이는 명백한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재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의 '독식현상'이 우려된다면 훈격의 조정을 통해 적절히 형평성(대기업-중소기업)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고액의 세금을 납부한 대기업들에게도 높은 훈격의 훈포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적극적인 투자, 신기술을 개발과 일자리를 창출하며 한류 확산에 기여하고 세월호 유족돕기 등 사회공헌활동 전개가 모범납세자 선정의 이유라면 고액의 납세와 더불어 이 같은 활동을 음으로 양으로 더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역차별을 받을 명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 중소·중견기업 '우대', 정말 문제 없나 = 국세청은 단순히 고액의 세금을 납부했다는 이유로 모범납세자 훈포장 후보자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납부세액이 적다고 해서 모범납세자가 아니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성실납세를 한 납세자라면 공정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년 선정되는 수 백명의 모범납세자들이 정말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했는지 여부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국세청이 보유하고 있는 납세관련 데이터는 대내외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보의 비대칭이 작금의 모범납세자 선발의 최대 맹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게 공평한 수상 기회를 부여하기 어렵다면 모범납세자에게 주어지는 세무조사 유예 혜택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세청이 2008년~2012년 기간 동안 세무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전문가들의 지적에 수긍이 간다.

이 기간 동안 세무조사를 받은 매출 10억원 이하 기업들의 탈루세액은 4802억이었으며 5000억원 이상 대기업 탈루세액은 3조6593억원이었다.

하지만 소득대비 탈루율을 보면 매출 10억원 이하 기업은 20.2%, 10억~100억원 기업은 19.8%, 100억~1000억원 기업은 16.7%, 1000억~5000억원 기업은 12.1%, 5000억원 초과 법인은 4.4%로 매출규모가 클 수록 탈루율이 낮았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세무조사 유예 혜택이 오히려 중소·중견기업에 악용될 여지가 더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소·중견기업들은 4~5년 주기로 순환 세무조사를 정기적으로 받는 외형 3000억원 이상 대기업에 비해 세무조사를 받을 확률 자체가 크게 낮은 것이 현실이다.

세무조사 유예 혜택을 외형 3000억원 이하 중소·중견기업에만 부여하는 것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외형기준을 폐지해 모두에게 공평하게 부여하거나 아예 혜택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방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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