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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납세자의 날, '패러다임' 바꾸자

①투명성 결여된 선정시스템이 낳은 '모범납세자'의 두얼굴

  • 보도 : 2015.03.09 07:21
  • 수정 : 2015.03.09 07:21

끊이지 않는 모범납세자의 '배신'…세금납부실적 '비공개'
베일 쌓인 선정과정, 납세자의 날 '권위' 떨어뜨리는 주범
전문가 "선정과정 투명성 위해 정보공개 필요하다"

◆…지난 2013년 12월 국세청이 제작해 특허청 상표등록까지 마친 모범납세자 엠블럼. 하지만 정부가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모범납세자를 제대로 선정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매년 기계적으로 수 백명씩 걷어 올리는 것이 아닌, 비록 숫자가 적더라도 진짜 모범납세자를 제대로 발굴해 이들이 대접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납세의식 향상에 더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편집자 주]

"국민들의 성실납세와 세정협조에 감사를 표한다."

정부는 매년 3월3일을 '납세자의 날'로 정하고 성실한 납세의무 이행으로 국가경제에 기여한 이들을 '모범납세자'로 선정해 포상을 실시하고 있다.

국세청이 개청한(1966년) 이듬해 제정된 납세자의 날은 올해로 49회를 맞는 등 반백년 역사를 써내려 왔다.

모범납세자에 대한 포상은 성실한 세금납부로 사회전반의 성숙한 납세문화 조성에 일익을 담당해준 것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상이다. 

국가에서 주는 포상인 만큼 상장과 패 정도로 끝이 아니다. 세무조사 유예 등 세정상의 혜택과 함께 크고 작은 사회적 우대혜택도 주어진다.

하지만 정부의 모범납세자 선정 시스템은 논란의 여지를 너무도 많이 내포하고 있다.

이들이 과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제대로 된 검증을 거쳤는지, 실제로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한 당당한 모범납세자인지 여부를 국민들이 판단할 직간접적인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는 고작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공한 정보(모범납세자 수상자 명단 발표)에 불과하다. '정보의 비대칭'은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의혹과 뒷말로 연결된다. 

아울러 정부가 모범납세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세정상 혜택의 '공평성'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상당하다. 이 같은 논란과 비판을 걷어내지 못하는 한, 납세자의 날이 갖는 의미와 정부 포상의 권위는 시간이 갈수록 퇴색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한민국 납세자들을 위한 기념일, 납세자의 날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세금납부, 잘 하셨죠?"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일 '제49회 납세자의 날' 행사에 참석, 사회봉사활동 및 성실납세 공적을 인정받은 연예인 임윤아(소녀시대 윤아)씨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 모범납세자 선정, 어떤 과정 거치나 = 모범납세자(훈포장 및 표창자)를 선정하는 첫 단계는 전국 일선 세무서의 추천(본인 신청도 가능)으로부터 시작된다. 통상 매년 11월 중하순까지 추천 및 신청을 받는다. 

자천 또는 타천 후보자들은 공적조서와 공적요약서, 이력서 등을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모범납세자 추천은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성실한 납세를 통해 국가재정에 크게 기여한 납세자여야 한다는 추상적 원칙 아래 체납액(정리 보류액)등이 있으면 선발군에서 제외된다.

세법, 기업회계 등 관련 법령에 따라 성실하게 신고 납부하거나, 지속적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사업자로서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성실하게 납세한 사업자 등이 모범납세자로 선정된다. 여기에 적은 수입으로도 자기 몫의 세금을 성실히 내는 소상공인도 포함된다.

특히 일정금액 이상의 결정세액을 납부하는 등 선발 기준도 충족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 일반 분야의 경우 법인사업자의 총 결정세액이 3000만원(법인세)이상이어야 하며, 개인사업자는 소득세 결정세액이 500만원이 넘어야 한다. 단 추천기준일 현재 5년 이상 계속사업자에 한해서다.   

소상공인(상시근로자 5인 미만)은 추천기준일 현재 3년 이상 계속사업을 영위해야 한다. 제조업 등을 영위하는 법인사업자는 직전 사업연도 외형요건(이익·재무 등)이 30억원 미만이어야 하며, 기타 업종은 15억원 미만이 대상이다.

개인사업자(제조업)는 연간 수입금액이 10억원(기타 업종은 5억원)미만이어야 한다.

자천 또는 타천 등의 형태로 추천된 후보군들에 대해 일선 세무서는 이들의 세금신고내역 등을 점수화해 소득규모별로 순위를 매기는 등의 검증을 거쳐 탈락 후보들을 가려낸 후 상급기관인 지방국세청에 상신한다.

형사처벌 내역 유무 등을 재차 검증한 후 지방국세청은 또 다시 추려진 후보군 명단을 본청에 상신하고 본청은 매년 1월 중하순 국세청장 표창 이상 포상후보자 명단을 사전공개한다. 약 일주일 가량 '대국민 공개검증'을 위한 절차다.

이 절차는 관세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후 국세청과 관세청에서 추린 포상후보자 명단은 기획재정부로 상신되고, 기재부는 행정자치부와 최종적인 협의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포상의 '급'과 상훈별 표창인원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표창수여 인원이 예비 수상자 인원보다 적을 시 종전에 매겨진 순위에 따라 상훈격이 하향되거나,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되는 등 막판 조율이 기재부와 행자부의 협의과정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 모범납세자의 어두운 '이면' = 여러 단계에 걸쳐, 여러 부처를 거쳐 후보군들을 가려내는 이유는 모범납세자로 선정될 경우 주어지는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나 상을 주고 혜택을 부여한다면 정부 포상의 권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를 매개로 한 '모럴 헤저드' 발생 소지를 잘라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설정해 놓은 2중 3중 검증장치를 거쳐 선발된 모범납세자들이 크고 작은 구설에 휘말려, 체면을 구기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모범납세자를 가려내는 정부의 검증장치에 결코 작지 않은 '결함'이 존재한다는 반증이자 모범납세자 선정 과정의 적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지난 2009년 모범납세자로 선정, 기획재정부 장관 표창을 받은 배우 송혜교 탈세논란이 가장 가까운 사례다.  

그는 표창 수상 후 부여된 세무조사 유예혜택 기간(국세청장 표창 이상 3년, 지방국세청장 표창 이하 2년)인 2009년부터 3년 동안 수입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방식으로 탈세, 추후 25억원의 세금이 추징된 사실이 공개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탈세 시기와 세무조사 유예 혜택 기간이 거의 겹치면서 모범납세자 제도를 악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또한 저변에서만 맴돌던 정부의 모범납세자 검증에 대한 의구심을 전면으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관세청 추천으로 모범납세자로 선정,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던 포스코P&S는 수상 후 불과 2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임직원들이 연루된 탈세혐의가 불거지기도 했다.

2010년 납세자의 날 최고 훈격인 금탑산업훈장을 달았던 현대중공업은 수 개월 뒤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2009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던 한국선재(주)도 이듬해 세무조사를 받아 자기자본의 4.47%에 달하는 23억원의 세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현대중공업과 한국선재의 경우 정부 스스로 '약속'을 깬(?) 케이스로 분류된다.

2010년 당시 국세청장 표창 이상 수상자에게는 3년의 세무조사 유예 혜택이 부여됐다. 명백한 탈세혐의가 붙잡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혜택이 부여되어야 하지만 이들은 수상 후 수 개월만에 정기세무조사를 받아 사실상 수상 혜택을 박탈당한 꼴이 됐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09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선정된 모범납세자는 1095명으로 집계됐으며, 이 가운데 49명에 대한 세무조사가 진행, 1872억원의 세금이 부과됐다. 수치적으로 볼 때 적은 규모이지만 이들이 정부의 인증을 받은, '모범납세자'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숫자가 내포한 의미는 결코 작지가 않다.  

◆…"모범납세자 납부실적 공개 안 하실 거에요?" = 국세청은 매년 1월 '제49회납세자의 날' 포상후보자 명단을 사전공개해 후보자들에 대한 대국민 의견을 받았다. 하지만 모범납세자 후보자들의 세금 납부실적 공개하지 않아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사전공개 후 의견수렴 기간도 짧은데다 국세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명단을 게재하는 것 이상의 공식적인 홍보 절차도 없어 실효성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은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위치한 국세청사 모습.

□ 모범납세자 세금납부실적, 왜 공개 안하나 = 일각에서는 모범납세자 검증이 후보자들이 제출한 증빙서류와 국세청이 보유한 납세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절차의 복잡성만 가지고는 내포되어 있는 리스크까지 검증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즉 '서류'에 의한 검증이 가진 한계로 인해 잠재적 탈세자도 얼마든지 모범납세자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상 후 탈세혐의로 구설에 오르는 모범납세자들이 발생, 모범납세자라는 타이틀과 정부 포상의 권위를 격하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매년 1월 모범납세자 후보 명단을 사전공개하고 대국민 검증을 진행하지만, 검증 기간 자체가 1주일 남짓에 불과한데다, 국세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명단을 게재하는 것 말고는 사전공개와 관련한 홍보활동도 없어 실효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특히 가장 문제는 모범납세자 후보 또는 수상자로 최종 선정된 이들의 세금납부실적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금납부의 성실성 여부는 사실 검증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정부의 검증시스템에 맡겨야 할 대목이라는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모범납세자 선정의 가장 기본적인 명분은 '세금납부실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세청은 '납세자 개인정보 비공개 원칙'을 이유로 모범납세자 후보 및 최종 수상자들의 세금납부실적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모범납세자 포상 이래 단 한 차례도 정보공개를 할 수 있느냐는 건의를 넣지도 않았다"며 "모범납세자로 선정된 사업자(개인)들이 제출한 증빙서류를 바탕으로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국민적으로 검증작업을 거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후보 또는 최종 수상자들의 일정기간 동안의 세금납부와 관련한 사항을 낱낱이 공개, 일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검증절차를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추후 일정기간 이후 이들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수준의 탈세혐의로 문제를 일으킬 경우 수상이력 및 혜택을 몰수하는 등 '사후자정 절차'를 만들어야 모범납세자 제도의 권위를 확립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모범납세자로 선정된 사업자가 어느 정도 세금을 납부했는지 알아야 제대로 납부를 이행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며 "납부실적이 공개되지 않는 이상 실질적으로 사전검증 명분이 서지 않는다. 모범납세자로 선정된 이들에게 정보공개 허락서를 받아서라도 정부가 이들의 납세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세전문가는 "모범납세자가 왜 모범납세자인지에 대해 정부가 국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일방적인 선정 방식을 고수해서는 모범납세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세무조사 유예 혜택을 받기 위해 기업들이 국세청을 상대로 로비와 청탁을 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며 "모범납세자 선정의 투명성에 대한 의심을 그대로 놔둘 경우, 납세자의 날이라는 의미는 시간이 갈 수록 퇴색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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