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1만원이면 된다.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거주하는 A씨는 농민이 아니지만 강동농협에 가입비 1만원을 내고 출자금으로 10만원을 내면 예적금 통장에 쌓아놓은 일정액의 금액에 대해서는 이자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다.
제주시에 거주하는 B씨도 마찬가지.
농협 준조합원 가입비는 각 지역마다 1000원에서 만원 사이로, 제주시농협 이사회가 결정한 규정 따라 B씨는 단돈 1000원에 출자금 10만원만 내면 준조합원으로 가입해 비과세 예탁금 통장을 만들면 남들 다내는 이자소득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20세 이상이면 1인당 3000만원까지, 4인가족은 1억2000만원까지 이자소득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상호금융 예탁금 비과세 제도.
당초 농어민의 자산형성을 위해 지난 1976년 도입된 이 제도는 지난 1995년 일몰기한을 가지는 시한부 제도로 전환됐다.
하지만 상호금융권과 정치권의 인공호흡으로 지금까지 숨을 이어오며 농어민이 아닌 도시민들의 배를 불려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키메라'로 전락해버린 상태다.
□ 농민의 '가면'을 쓴 도시민들 = 농협이라는 과일의 껍질을 벗겨보면 그 속에는 도시민이라는 속살이 자리잡고 있다. 당초 농민들의 자금형성 및 복지라는 취지와는 다르게 구성원의 대다수가 도시민인 것이다.
지역농협의 조합원이 되려면 일단 농축산업에 관련된 일을 하고 그 지역에 주소지를 두고있는 거주민이어야 한다.
이들에게는 출자금의 1000만원까지, 예탁금의 3000만원까지 이자소득세가 면제된다.
하지만 굳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바로 준조합원 제도 때문이다.
신협, 새마을금고 등과 달리 농어민을 주 대상으로 하는 농수협은 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조합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또한 농업, 어업에 종사해야 조합원 자격이 주어지는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조합원 수를 늘리는데도 한계가 존재한다.
이때문에 농수협은 농어민이 아닌 이들의 자금을 준조합원이라는 제도를 통해 조합에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2014년 기준 농협조합 회원 중 조합원은 14%에 불과한 235만명이며, 나머지 대다수 86%, 1675만명은 농축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준조합원인 것이 현실이다.
또한 작년 9월말 기준 상호금융 총 수신 314조856억원 중 세금이 매겨지지 않는 비과세 예탁금의 규모는 31%인 96조359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지난 1995년부터 계속해서으로 예탁금 비과세 제도를 종료하고자 시도했으나 상호금융업계와 정치권의 반대로 현재까지 폐지는 요원하다.
□ 예탁금 비과세 문제, 폐지가 답일까 = 한편 학계에서는 예탁금 비과세의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가 현재 비과세 예탁금제도를 폐지하고자 추진하고 있지만 이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사시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내 돈을 다른 사람이 쓰게하고, 내가 돈이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의 돈을 쓰는 것이 조합의 취지"라며 "돈이 필요하지 않은 자금여유자들이 이자수입 확대수단으로 비과세예금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정부가 하자는대로 비과세 예탁금을 폐지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라며 "이대로 비과세 혜택을 폐지하면 상호금융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현재 상호금융의 문제는 예금에만 지나치게 자금이 몰리는 것이라며 비과세예탁금 폐지 대신 상호금융사들에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연구위원은 "조합원이 서로의 자금을 사용한다는 본래 상호금융의 취지를 봤을 때 비과세예금은 폐지하되 그대신 법인세를 면제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며 "미국과 같이 상호금융에 법인세를 면제하면 혜택이 예금, 대출, 배당에 모두 돌아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가장 큰 상호금융인 농협에 대해서는 준조합원 제도를 폐지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고 지적하며 "농협은 가장 지점이 많은 상호금융이고 그만큼 편의성도 크다"며 "여기에 가입하는 준조합원들은 비과세 혜택을 보기 위해 가입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이어 "농민과 어민의 수가 줄고있기 때문에 준조합원 제도를 폐지하면 농협, 수협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준조합원 제도 폐지보다는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자는 조합원이 되지 못하게 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