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세종시 이전 한달…"수송동 청사가 그리워요"

◆…"단독청사라 좋았는데, '셋방살이' 신세일 줄이야... = 화려한 외형에 국세청만 단독으로 쓰는 청사지만 국세청 직원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신세다. 사무실 배치나 파티션 위치, 각종 시설 등 모두 세종청사관리소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 서울에서는 집주인 행세를 하던 국세청이 세종시에 내려와서 셋방살이를 하게 되면서 직원들은 수송동 청사가 그립다고 말한다.

'내 것인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국세청사'. 세종시에 내려온 지 한 달이 지난 현재 국세청 직원들이 느끼는 세종시 나성동 국세청사에 대한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게 요약될 것이다.

1단계와 2단계 이전 부처들이 합동청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달리 마지막으로 세종시에 내려온 국세청은 청사를 단독으로 사용해 타 부처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업무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입주 첫날부터 무너졌다.

건물 바깥에서 보는 청사의 모습은 으리으리하다 못해 웅장했지만 내부는 서울 수송동 청사에 비해 더욱 비좁았다.

가장 짜증을 유발하는 대목은 출근할 때마다 거치는 이중 삼중의 출입증 검사. 출입증이 인식이 되지 않을 때도 많아 국세청 직원들은 "성공하였습니다(출입증 인식 성공시 나오는 기계음)"라는 말을 듣는 것이 소원 아닌 소원(?)이 됐다.

이밖에 더위에 취약한 건물 구조와 맛이 없다 못해 음식도 매번 부족한 구내식당 등 국세청 직원들의 세종시 적응은 수난의 연속이다.

고충 1. 출근길, 얼굴 붉히다 이제는 '포기'

단독청사의 기대감이 완전히 꺾이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끈질긴 출입증 요구에 불만을 표시하는 국세청 직원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킨 청사경비요원들. 안면이 있는 직원들에게도 청사경비요원들의 매정함(?)은 매한가지. 이제는 포기하고 군말없이 청사경비요원들의 통제를 따르고 있다.

정부청사를 드나들 때 신분증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에 대해 따지는 국세청 직원들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지 모르지만 국세청 직원들은 할 말이 많다.

사무실에 들어가기까지 적게는 세 번에서 많게는 네 번의 출입증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세청사 정문에 들어서면 문 앞에 있는 청사경비요원이 출입증을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정문을 무사 통과하면 1층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게이트가 출입증을 찍어달라며 기다리고 있다.

◆…"너, 출입증, 성공적" = 국세청 직원들은 절실하게 성공하고 싶다.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1층 게이트에서는 출입증 인식이 잘 되지만(사진 왼쪽) 사무실마다 설치된 출입증 인식기(사진 오른쪽)는 한마디로 '복불복'이다. 그래서 직원들은 출입증을 인식했다는 증거인 "성공하였습니다"를 꼭 듣고 싶어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무실도 출입증을 찍어야만 문이 열리기 때문에 출입증을 다시 꺼내야 하지만 여기서 직원들의 짜증은 솟구친다. 사무실마다 설치된 출입증 인식 장치가 그 때 그 때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성공하였습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문이 열리지만 재수가 없으면 아예 인식을 하지 않아 안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어줘야만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직원들은 "성공하였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소원이 되어버렸다는 전언이다.

차를 가지고 출근하는 경우는 신분 확인 절차가 하나 더 추가된다. 등록된 차량은 자동으로 문이 열리지만 운전자 뿐만 아니라 동승자도 청사 출입증을 제시해야 청사에 들어갈 수 있다.

이에 한 직원은 "차량이 등록되어 있으면 당연히 국세청 직원이 아니냐라고 항의하며 출입증을 제시하지 않고 버티자 청사경비요원은 미동도 하지 않더라"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물론 정부청사를 출입하는데 보안이 강화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국세청 직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출입증을 검사하는데 2명씩 서 있다. 청사관리소에서 국세청사로 파견된 직원들이 200명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인력낭비 아니냐"라며 "보안도 좋지만 인력을 너무 비효율적으로 운용한다"고 말이다.

고충 2. 좁은데 덥기까지…"사우나가 따로 없네"

넓은 면적에 으리으리한 청사 외관을 보면 내부 시설도 굉장히 좋을 것 같지만 국세청 직원들은 수송동 청사보다 더 나은 점을 찾지 못하겠다고 하소연이다.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이나 국장실과 차장실, 국세청장실도 수송동에 있던 시절보다 훨씬 좁아졌기 때문. 안전행정부는 전 부처와 동일한 기준으로 사무실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가뜩이나 타지에 홀로 떨어져 근무하는 직원들은 근무공간마저 좁아져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더욱 힘든 것은 창문은 커졌지만 제대로 열 수가 없고 난방의 열기는 너무 강하다는 것. 좁아진 근무환경에 더운 열기까지 겹쳐 오후만 되면 국세청 직원들은 사우나 같다고 아우성이다.

심지어 국장들은 수송동 청사에 비해 반토막이 난 집무실 때문에 소파와 텔레비전까지 버렸다. 과장들과의 티타임도 불가능 해 회의실 등을 빌려 티타임을 한다는 후문이다.

특히 간부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지만 창문을 활짝 열 수 없는 구조에다가 정남향이라 오후만 되면 햇볕이 많이 들어와 추운 겨울인데도 불구,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한다.

◆…"난 네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 = 국세청사는 미로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입체감 있는 하나의 네모난 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작은 'ㄷ'자 모양으로 구조로 돼 있어 밖을 바라보면 바로 다른 사무실이 보인다. 결제서류까지 보일 정도로 가까워 직원들은 항상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생활한다.

과장 조금 보태 몇몇 사무실은 창문으로 건너편 사무실 책상에 있는 결제서류 파일까지 다 보여 항상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어야 하는 고충도 있다.

국세청 직원들은 "국세청사 건물 자체가 좁으면 말도 안 한다. 건물도 크면서 너무 쓸데없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 근무할 공간이 부족하다"며 "청사 구조가 비효율적이지만 청사 관리를 국세청이 하지 않아 어쩔 수가 없다. 요즘은 청사관리소가 '슈퍼갑'"이라고 말한다.

◆…"수제비인데 왜 수제비는 안 보이니?" = 지난 달 29일 석식 때 나온 구내식당 메뉴. 식단표에는 현미밥, 수제비국, 주꾸미초무침, 우엉조림, 콩나물무침, 저염김치라고 쓰여있지만 수제비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날 저녁을 먹은 직원들은 대부분 맛 없다고 평가를 내렸다. 구내식당 문 앞에 있는 음식 맛을 평가하기 위해 붙이는 스티커도 모두 '별로예요'에 붙어있었다.

고충 3. 맛 없는데 음식까지 바닥난 구내식당, "정말 너무하네"

객지 생활에서 가장 서러운 것이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할 때이다. 타지에서는 먹는 것이라도 맛있게, 든든히 먹어야 서러움이 덜하겠지만 국세청 직원들에게는 이 마저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풀무원 ECMD가 운영하는 구내식당의 음식맛이 없기도 없거니와 양이 모자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

국세청사 내 구내식당의 경우 조식과 중식, 석식 모두 3500원이지만 청사 입주 초반에는 조식이 누룽지와 김치 정도만 나와 국세청 직원들의 불만이 상당했다.

가격에 비해 음식이 부실했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시리얼과 토스트, 샐러드도 아침 메뉴에 추가됐으며 2500원으로 라면을 제공하기 시작해 지금은 직원들의 불만이 다소 누그러진 상황이다. 처음에는 라면을 직접 끓여줬지만 나중에는 라면기계를 들여다놓고 직원들이 직접 끓여서 먹고 있다.

◆…"세종시, 넌 나의 미각을 빼앗아갔어" = 세종시 생활의 가장 불편한 점은 '먹는 것'. 서울에서처럼 주변에 식당이 많다면 구내식당 음식이 별로 맛 없어도 문제되지 않지만 식당이 별로 없는 세종시에서는 구내식당이 유일한 대안이다. 하지만 맛은 고사하고 점심 때는 음식까지 종종 떨어지면서 직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그나마 요즘에는 조식 때 라면기계를 들여놔 직원들의 해장을 도와주면서 불만이 조금씩 수그러들고 있다.

하지만 중식 때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맛이 없기는 기본, 준비된 음식이 부족해 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매번 양 조절에 실패해 직원들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 빈 식판을 들고 기다리거나 반찬 없이 밥을 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수 일 전 중식 메뉴로 나온 닭볶음탕이 떨어져 줄을 서 있던 직원들이 10분이나 기다렸지만 조리 중에 있다는 말과 함께 메인 메뉴 없이 밥과 김치, 국만 받아와 식사를 해야 했다. 

한참 지나 닭볶음탕이 나왔지만 조리시간이 부족해서인지 하얀 닭고기살에 소스를 끼얹은 수준으로 제공되면서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하기도 했다.

국세청 직원들은 수송동 청사에 있을 때도 구내식당에서 제공한 식사의 맛이 그닥 좋은 것은 아니였지만 주변에 먹을 곳이 많아 나쁜 평가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세종시는 가뜩이나 주변에 식당도 없는데 구내식당마저 맛이 없어 불평들이 많다.

고충 4. 안내판에는 있는 약국과 매점, 어디있나요?

국세청사 안내판에는 약국과 매점, 헬스장, 미용실 등이 있지만 현재 청사 내에서 영업을 하는 곳은 헬스장과 미용실, 이용실 뿐이다.

약국과 매점은 들어온다는 말만 있을 뿐 언제부터 영업을 개시하는지 몰라 직원들은 약국을 가려면 길을 건너 10여분을 걸어가야 한다.

매점도 없어 담배가 떨어진 직원들은 저 멀리 편의점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동료 담배를 얻어다 피우는 방법을 선택한다.

담배값이 껑충 오르면서 동료의 담배를 빌려 피우는 것도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라는 귀띔.

그나마 운영 중인 헬스장도 직원들의 불만이 쌓여있기는 마찬가지다.

헬스장 운영시간을 너무 빡빡하게 잡아놨기 때문.

아침에는 6시부터 9시까지, 점심에는 12시부터 1시까지, 저녁에는 18시부터 21시30분까지 운영하는 헬스장에 직원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수송동 청사에 있을 때는 헬스장을 항상 열어둬 아침 일찍 출근해 운동을 하고 여유있게 샤워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청사 헬스장은 8시30분만 되면 샤워실에서 나가야 한다고 독촉한다는 전언이다.

◆…"공무원은 시간을 칼 같이 지켜야지" = 서울 수송동 청사의 헬스장은 상시 문을 열어놨지만 세종시 국세청사의 헬스장은 오전과 점심, 저녁 정해진 시간에만 문을 열어놓는다. 특히 점심 때는 12시 땡하면 문을 열어 직원들이 불편하다고 호소하지만 청사관리소는 세종시 전 부처가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이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점심시간에는 보통 10분 일찍 나가 점심을 먹으러 가는 사람들처럼 헬스장을 이용하려는 직원들도 10분 정도 일찍 헬스장에 도착하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아 12시까지 문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가뜩이나 짧은 점심시간에 옷이라도 먼저 갈아입고 빨리 운동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직원들은 "수송동이 그립다"라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