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금융 "관치 중의 관치"…은행·보험vs벤처계 시끌

기업·우리銀 등 정부 은행 위주 실적…보험 업계 반발 확산

박근혜 대통령이 금융권의 '보신주의'를 문제삼으며 정부가 '기술금융' 장려 정책을 활발하게 시행 중이다.

기술금융이란, 은행이 담보를 받지 않고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의 기술을 평가해 대출을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신제윤(사진)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올 초 벤처 업계 간담회를 시작으로 지난 8월 1박2일 일정의 기술금융 간담회를 여는 등 현장 행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10월, 11월, 12월에는 수도권과 충청, 경남 소재의 시중은행을 방문했다.

하지만 금융권 일부에서는 이 같은 정부의 정책을 두고 우려의 시선을 쏟아내고 있다. 은행 자금은 일반인 예금이 상당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위험한 벤처 투자를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기술금융에 대한 정부의 압력이 보험 업계까지 확산되며 금융권 반발이 커지고 있다.

□ 기술금융 하이리스크(high risk)…'울며 겨자 먹기'= 올해 기술금융 시장은 급속도로 커졌다.

금융위 조사 결과 지난 8월 기술신용 평가기관(TCB)의 기술 기반 대출은 1661건, 1조1400억원을 기록했다.

한 달 전인 7월 599건과 비교해 약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정부 소유 은행인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은 약 700건(5080억원), 200건(1750억원)을 기록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관련 업무를 확대하기 위한 조직 개편도 발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기업은행과 신한은행, KB국민은행은 기술금융 관련 업무를 위해 최근 전문 인력을 새로 뽑거나 채용을 진행 중이다.

이 같은 배경을 살펴보면 당국의 압박이 결정적이라는 분석이다.

금융 당국은 시중은행의 기술 혁신성 평가를 해마다 두차례 실시하기로 밝히면서 은행들은 강제라도 기술 대출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은행별로 실적이 공개되고 은행장 등 임원 평가에도 반영된다.

하지만 은행들은 담보가 없을 경우 대출 회수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기술금융은 관치 중의 관치"라고 비판했다.

이번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한 당국의 관계자도 "기술금융이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을 도울 수 있지만 부실 우려가 나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보험사, "창업·벤처 투자 절대 안돼"= 금융위원회는 최근 보험사의 자회사에 대한 자산운용 규제를 완화키로 한 보험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즉, 금융위가 보험사의 창업·벤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소기업 창업 투자조합, 한국벤처 투자조합, 신기술사업 투자조합 등 그동안 금지한 자산운용을 규제 예외에 포함키로 한 것이다.

이에 보험사들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특히 생명보험사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생보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보장성보험보다 저축성보험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지난 9월 말까지 생명보험협회에 등록된 전체 생보사의 수입보험료를 살펴보면 저축성보험의 비중은 평균 56.7%이다. 심지어 IBK연금보험의 경우는 저축성보험의 비중이 100%이다.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98.4%) KB생명(94.9%) 하나생명(91.5%)은 무려 90%가 넘는다. 이밖에 NH농협생명(85%) 라이프플래닛(78.7%) 우리아비바생명(72.2%) 알리안츠생명(71.4%) 미래에셋생명(65.8%) 흥국생명(64.8%) 동양생명(63.5%) KDB생명(62.7%) 현대라이프(59.5%) 등은 평균보다 높다.

생보사의 한 관계자는 "저축성보험의 경우 고객 돈을 받아 운용해 불려서 고객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즉, 보험금을 주기 위해 돈을 굴리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를 안정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벤처와 창업에 투자를 하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과연 그런 투자를 할 수 있는 보험사가 있을지 의문이다"고 우려했다.

지난 1년 벤처·창업 실적만 놓고 봐도 보험사들은 절대 큰 위험률을 감수하고 투자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다른 생보사 관계자는 "보험사 자산운용은 거의 채권 투자에 의해 이뤄진다. 주식 투자 비율도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정권 바뀔 때마다 금융정책 '출렁' 단기 성과 급급= 금융산업은 금융정책의 영향을 비교적 크게 받는다. 과거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이나 녹색금융은 대통령 공약에서 나온 단골 메뉴들이다.

문제는 정책 효과가 장기간 발휘되지 못하면서 금융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은행이 기술 기반 대출을 하는 대신 벤처캐피털에 간접투자 하는 방식도 있지만, 여전히 큰 과제로 남는다.

대형 벤처캐피털 회사의 고위 임원은 "은행이 벤처 투자를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다만 정부의 압력에 의해 하는 것은 문제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이 저수익성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자산운용 전략을 다양화하는 것은 이 같은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