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데 먼길 떠나려니 참…" = 수송동 국세청사 1층 로비는 찬바람이 쌩쌩부는 바깥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이삿짐이 오고가는 통에 곳곳에 문을 활짝 열어둬 찬바람이 무섭게 들이닥쳤다. 1층만 가면 직원들의 "추워"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일부 직원들은 "날도 추운데 먼 곳으로 떠나려니 참…"하며 씁쓸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진=김용진 기자)
드르륵 드르륵…
19일, 차가운 아침공기를 가르며 굴러가는 바퀴 소리가 국세청사 1층을 가득 메웠다.
매서운 바람에 몸이 움츠러드는 한겨울이지만 서울 수송동 국세청사는 아침 일찍부터 문을 활짝 열어두고 이삿짐을 나르느라 분주한 움직임들로 꽉 찼다. 1층 로비에 쌓여있는 냉장고와 책상, 의자, 캐비닛 등은 찬바람을 맞으며 멀리 남쪽 세종시로 떠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주부터 시작한 이사는 본격적인 세종시 업무 개시 3일 전인 19일 절정에 다다른 모습이었다. 화물용 엘리베이터만 이용하던 이삿짐들도 이제는 많은 짐을 감당할 수 없어 중앙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있었다.
◆…"짐이 이렇게나 많았어?" = 십수년 묵은 짐을 빼내려니 직원들도 고역이다. 이런 물건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오래된 책과 사무용품, 심지어는 언제적인지 모를 옛날 사진까지 나와 짐을 싸는 직원들을 옛 추억에 잠기게 만들기도 했다. (사진=김용진 기자)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직원들도 일이 손에 잡힐리 만무했다. 오는 22일부터는 세종시에서 일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직원들도 이삿짐을 싸느라 분주했다.
한 부서에는 문을 열자마자 입구부터 안쪽까지 쭉 쌓여있는 박스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박스로도 모자랐는지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구해다 짐을 챙겨 쌓아놓은 부서도 있었다.
발 디딜 틈이 없긴 복도도 마찬가지였다. 사무실에서 쓰던 쇼파와 책장, 책상 등 집기들이 모두 복도에 나와 차에 실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부서는 이삿날이 며칠 남지 않았음에도 이사준비는 커녕 박스 몇 개만 쌓아놓고 일에 전념하는 부서도 있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보니 타 부서처럼 이삿짐 포장하는 일에 매달릴 수가 없어 주말에 직원들이 총출동해 짐을 싼다는 계획이다.
◆…"빨리 빨리 가야지" = 세종시 업무가 개시되기 3일 전인 19일 국세청은 그 어느 때보다 이삿짐 싸는 손길이 분주했다. 어떤 부서는 짐을 거의 옮기고 세종시에서의 업무 준비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일이 바쁜 부서는 이삿짐 포장을 꿈도 못 꾸고 있었다. (사진=김용진 기자)
이미 세종시로 떠난 부서가 있던 자리는 집기가 하나도 없이 덩그러니 사무실만 남아 있었다.
12년 세월의 흔적은 바닥과 벽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책상이 놓여져 있던 자리와 캐비닛 놓여져있던 자리에는 거무스름한 먼지자국이 남아있었고 사용했던 집기들도 세월의 흔적을 피해가진 못했다.
십수년간의 먼지와 때가 묻은 집기를 무엇하러 세종시까지 가지고 가나 생각이 들지만 집기 하나마저도 국민 세금이다보니 새 집에 새 가구를 들여놓을 생각은 꿈도 못 꾼다는 후문이다.
◆…"온실 속의 화초라는데…" = 온실 속의 화초라지만 국세청에 있던 난과 화분 등은 온실은 커녕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140km를 달려가게 생겼다. 이사하기 전부터 잎이 부러진 '산사베리아'는 때 아닌 수난을 겪고 있다. (사진=김용진 기자)
세종시로 먼저 떠난 부서는 이미 일주일 전부터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업무를 하고 있다.
먼저 떠난 이들은 아직 수송동에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서울 바람보다 세종시 바람이 더 매서우니 따뜻하게 입고오라"는 애정어린 충고를 해주기도 하고 내려올 직원들을 위해 사무실 환기도 해 놓고 있다는 전언이다.
◆…"31년을 버텨와서 그런지 무겁네" = 수송동에서 31년 동안이나 있었던 국세청의 현판이 임환수 국세청장과 김봉래 차장의 손에 의해 내려졌다. 49년 만에 서울을 떠나는 국세청 직원들은 수십년간 한 자리에 머물다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으면서 발걸음을 쉽사리 떼어내지 못했다. (사진=김용진 기자)
31년 세월, 내려놓다
직원들이 이삿짐을 싸느라 분주한 사이 임환수 국세청장과 김봉래 국세청 차장 등 고위간부들은 30여년간 국세청과 함께한 현판을 떼어내고 세종시로 옮기는 역사적인 현장에 서 있었다.
임 국세청장과 김 차장은 오전 11시 국세청사 1층 문 앞 걸린 국세청 현판을 떼어냈다. 국세청의 30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현판이 서울을 떠날 채비를 하는 순간이었다.
임 국세청장을 비롯한 국세청 고위공무원단은 내려진 현판의 빈자리를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국세청이 수송동에서 업무를 시작한 시기에 입사한 임 국세청장과 고위간부들은 그 누구보다 감회가 남달랐다.
아무것도 몰랐던 초임 시절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20여년 혹은 30년 가까이 국세청과 동고동락을 함께 한 이들에게 수송동 국세청사는 일하던 '건물'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비슷한 시기 입사한 고공단, 떠나기 싫으네" = 임환수 국세청장을 비롯한 고공단 대부분이 수송동에서 업무를 시작하던 초반에 입사해 청사를 이전하기까지 수십년을 이곳에서 동고동락해왔다. 수송동 청사와 비슷하게 국세청에서 세월을 보낸 고공단들은 옛 추억이 생각나는 듯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김용진 기자)
사실 지금의 국세청사는 국세청이 31년 전 수송동에 왔던 그 당시 모습은 아니다.
국세청은 1983년 지금의 청사 자리인 수송동 합동빌딩에 입주했다가 1999년 안전상의 문제로 구청사가 철거된 뒤 종로타워에 임시로 있다가 다시 현 청사로 이전하는 등 변동은 있었지만 장소만큼은 31년 같은 곳에 머물렀다.
엄연히 따지면 지금의 청사는 2002년부터 입주해 12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지만 수송동에는 31년 동안 있었던 셈이다.
임 국세청장은 "1985년에 국세청에 입사해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있었다"며 "이곳을 떠나려니 아쉽기도 하고 감회가 남다르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다른 고위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김재웅 중부국세청장, 김형중 대전국세청장, 신수원 광주국세청장, 남동국 대구국세청장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국세청에 들어와서 수송동 청사에 이십여년을 있다가 떠나려니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국세청은 오는 22일 오후 3시 세종시 나성동에 위치한 국세청사에서 입주식과, 현판 제막식, 표지석 이전식 등을 가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