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야합'에 휘둘려 멍들어가는 대한민국 세법(稅法)

38%의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소득세 최고 과표구간을 3억원으로 설정한 이른바 '한국판 버핏세'가 도입된 것이다. 한국판 버핏세는 '국회(여당)의 반란'이라고까지 표현되며 일대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법안은 도입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법인세율 인상 법안을 포함한 종합적인 '부자증세 패키지'를 내놓은 야당의 파상공세에 부딪혀 지난 2012년 말 최고세율 적용 과표구간이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재조정됐다. 

치열한 정쟁 속에 '가짜'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던 한국판 버핏세는 그렇게 또 사라져 버렸다.  

올해 세법개정안의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였던 담뱃값 인상안(2500원→4500원)은 여론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원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됐다. 본회의를 정회하고 부랴부랴 표 단속에 나선 여야의 일사분란함에 관련 법안(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이 그대로 안착한 것이다.

세법은 법안 하나하나가 '민생'과 직결된다.

좁게는 가정경제, 넓게는 국가경제의 흐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세법은 그만큼 깊은 고민의 과정과 충분한 여론의 검증 등 신중한 논의를 거쳐 개정되거나 신설되어야 한다. 헌법이 '조세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 또한 이 같은 무거운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가 세법개정을 위해 밟는 일련의 과정에는 이 부분이 결여되어 있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수 년 사이 이러한 경향은 심각한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해마다 수백 개씩 쏟아져 나오는 세법개정안들을 과연 국회는 얼마나 제대로 뜯어보고 따져본 뒤 국민에게 소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조세법률주의의 기본정신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 "국민들은 정치적 '빅딜'에 관심없다" = 그동안 여야는 쟁점 세법개정안의 통과를 놓고 흔히 '딜'이라는 것을 종종 일삼아 왔다. '우리가 이것은 양보할 테니 저것은 너희가 포기하라'는 식의, 말 그대로 정치적 거래다.  

딜의 결과로 달라지는 세법이 민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가려진다. 오직 정치적 선택만이 존재하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행태다. 결국 '여야합의'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꾸며지지만 그저 정치적 잇속을 챙기는 야합일 뿐이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구간이 종전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낮아지는 과정을 들 수 있다.

당시 야당은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과표 최고구간을 낮출 것을 줄기차게 주장해왔고, 여당은 2억원 초과 선에서 과표구간을 인하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맞서왔다. 

그러나 야당이 당론으로 반대해온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를 수용하겠다는 협상카드를 내놓자 여당은 야당의 과표기준안을 받아들였고 결국 '패키지 합의'가 성사됐다. 소득세 과표구간 인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었다. 그저 협상카드가 먹혔을 뿐이었다.  

이로 인해 여야는 소수의 고소득층을 희생시켜 다수의 중하 소득층의 표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 하에 졸속으로 세법 개정안에 합의했다는 지탄을 들어야 했다. 또 정치가 타협이라지만 이 같은 합의는 '주고받기 식 야합'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라는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최경환표 3대패키지'로 불리는 가계소득증대 3대 패키지와 관련, 예산안 법정시한(12월 2일)을 하루 앞둔 1일까지 야당은 분명 '부의 대물림'이라며 반대의사를 명확히 해왔다.

특히 배당소득 증대세제 부분에서 이견이 확연, 당시 조세소위 위원장인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은 "야당이 '최경환 표 세법개정안'에 합의해 주면 다른 야당 요구사안을 논의할 생각인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최경환표 세법개정안을 통과시켜준다면 야당이 요구한 개정안에 대해 양보할 생각이 있다는 의중이 숨어있었던 것. 결국 3대 패키지는 정부원안이 무사히 국회를 통과했다.  

국민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국회의 '주고받기 식' 입법을 정작 국민은 속수무책으로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서울시립대 박훈 교수는 "세법개정은 논리적인 검토도 필요하지만 정치적 합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며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 있도록 하고 여야가 나누어 먹기식으로 주고 받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문 닫힌 조세소위, 무슨 일 있었나? = 정부는 올해도200여개의 세법개정안을 내놨고, 30여개의 의원안까지 더해 총 230여개의 세법이 조세소위에서 심의됐다.

14일 1차 회의를 시작으로 자동부의(12월 1일 0시)되기 전까지 2주 동안 총 9번의 회의를 거쳤다. 하지만 2주 동안 230여개에 달하는 방대한 세법개정안을 심의하기엔 시간이 촉박했고, 여기에 파행까지 속출하며 결국 '졸속심의'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소위기간 내내 의원들은 제대로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1회 검토 때 야당 의원들은 대부분이 불참했고 일부 여당 의원도 지역구 행사가 중요하다며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 '부자감세', '가짜 민생법안' 등 당론에만 치우쳐, 비쟁점(?)법안들은 큰 문제가 없다 싶으면 수박 겉핥기식으로 통과에 합의했다. 

2차 검토 시에는 이미 합의된 사안이 줄줄이 번복돼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에 더욱 쫓기게 됐으며, 심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에는 3대패키지, 가업상속공제 등에 대한 갈등으로 급기야 소위가 파행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시간에 쫓겨 수많은 개정안은 지도부 간의 합의로 넘겨졌으며, 예산안 처리 몇 시간 전 지도부 간의 의견 조율로 갈등은 가까스로 해결됐다. 하지만 예산부수법안들이 의원들의 심의를 제대로 거치지 못한 채 본회의로 직행, '조세소위 무용론'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세법이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통과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조세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조세소위에 대해선 이익집단들의 알력다툼의 장이라고 보는 게 오히려 정확하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특히 11월이 돼서야 꾸려지는 조세소위 일정을 8월 정부 세법개정안이 발표된 직후로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 조세전문가는 "여야가 국민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어 내겠다는 생각보단 단순히 정치적 협상카드를 만드는 것에 주력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며 "조세소위 구성은 지금보다 앞당겨져야 하며, 충분한 심의과정을 거친 세법만 통과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 : 김진영, 이현재, 강상엽, 류성철, 우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