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국 경력 '그랜드슬램'…균형감각 갖춘 덕장(德將)

승진 관문이 ‘바늘 귀’로 통하는 국세청에서도 행정고시가 아닌 7～9급으로 국세청으로 들어와 눈물겨운 노력 끝에 1급 간부까지 오르는 사례는 그래도 꽤 여럿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범위를 좁혀 7・9급 공채출신 국세공무원 가운데 청와대나 국무총리실, 또는 기획재정부 등 다른 부처 파견이나 전출 등의 근무경력 하나 없이 1급 직위까지 오른 경우는 눈을 씻어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학영 중부지방국세청장은 지난 1978년 초 7급 공채출신으로 국세청에 입문, 대한민국 1번지 세무서로 통하는 종로세무서 조사과에서 원천징수영수증 대사업무로 첫 업무를 시작한 이래 35년 동안 국세청 안에서만 오롯이 성장한 입지전적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국세청 사람들이 그를 ‘입지전적(立志傳的) 인물’로 주저 없이 꼽는 데는 그가 승진에 유리한 조건이라 할 수 있는 학연・지연・혈연 등 어떤 배경도 없이, 핵심을 제대로 짚는 뛰어난 업무능력으로만 오로지 승부해서 인정을 받은 인물이기 때문인 것도 한 몫 한다.

그만큼 그는 국세청 재직기간 내내 후배들로부터는 ‘뚜렷한 개성이나 강력한 카리스마는 없지만 ‘말’보다는 ‘보여주기’를 앞세워 후배들을 이끄는 덕장(德將)‘으로, 선배들로부터는 ’핵심을 잘 짚어 어떤 일이든 야무지고 깔끔하게 처리한다‘는 평가를 달고 다녔다.

그런 그가 중부지방국세청장을 마지막으로 35년 동안 모든 열정을 다 바쳐 노력했던 공직생활을 접고, 오는 18일 ‘명예퇴임식’으로 마지막 일정을 소화한 뒤 정들었던 동료들과 후배들을 마음 한가득 간직한 채 국세청을 떠난다. 

1957년 서울에서 5남2녀의 여섯 번째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공직생활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 당시 교육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자식들이 공직에 진출하기를 간절히 바래왔고, 자연스레 집안분위기가 공직을 희망하는 쪽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학진학도 서울시립대 행정학과로 했고 세무직 7급 공채시험에 당당히 합격, 첫 보직을 종로세무서 조사과에서 시작한 이래 검은 머리가 반백이 되는 세월 동안 국세공무원으로 재직하며 결코 지울 수 없는 수많은 발자취를 남겨 놨다. 

국세청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된 이학영 중부청장의 모습은 뚜렷한 개성을 가진 강력한 사람이라기보다 모든 일에서 조용하고 합리적이며, 동료 후배직원들의 의견을 조화롭게 반영하는 스타일을 가진 배려 깊은 인물이자 덕장(德將)이다.

그는 상대방의 주장이나 의견을 조용하게 끝까지 들어주고, 그 의견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다고 판단될 땐 그 상황을 상대가 납득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설명해 준다. 이 때문에 후배들 입장에선 그를 ‘자신을 배려 깊게 잘 챙겨주고 걱정해 주었던 선배’로 기억한다.

조사업무는 물론 통상적인 업무와 승진 등 인사업무에 있어서도 균형적인 감각을 가지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형평성 있게 처리하는 합리적인 스타일을 견지, 직원들부터 덕장(德將)이라는 얘기도 많이 나온다. 

그는 역대 중부청장 가운데 ▲서기관 9명 ▲사무관 39명 ▲일반직원 436명 등 가장 많은 인원을 승진시키면서도 별다른 잡음을 일으키지 않았고, 지난 1년 동안 중부청 직원 700여명과 식사하며 편안한 분위기로 격의 없는 대화를 이끌며 소통과 화합의 스킨십을 갖기도 했다.

사무관 시절부터 상사들로부터 “보고서를 정말 잘 쓴다”다거나 “핵심을 잘 짚어 접근하고 어떤 일이든 주어진 시간 내에 야무지고 깔끔하게 처리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그였기에 중부청 직원들은 이 청장으로부터 업무노하우를 전해 듣는 것을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중부청장 재직기간 내내 직원들에게 무엇인가 하나라도 더 자신의 경험과 팁을 전해주려고 노력했고, 외부민원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납세자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세심하게 경청해 주는 등 납세자 불만을 줄이는 데도 진심을 다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청장의 국세청 35년 근무경력을 살펴보면 ▲조사분야 12.1년 ▲소득세분야 5.1년 ▲감사분야 5년 ▲법인세분야 3.1년 ▲징세분야 2.7년 ▲재산세분야 1.9년 ▲민원 1.5년 ▲부가가치세 분야 7개월 등 모든 국세행정분야와 세목을 망라한 것이 특징이다. 

서울지방국세청의 법인1계장과 세원분석국장을 지내며 서울청 법인세 행정발전을 위한 전반의 밑그림을 직접 그렸을 뿐더러, 국세청에서 납세자권익보호를 위한 상징적인 부서라 할 수 있는 납세자보호담당관실을 현재 모습으로 실질적으로 설계한 것도 그였다.

그는 국세청이 조사국 견제와 납세자권익 보호를 위해 만든 서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실의 전신인 조사상담관실의 초대 실장으로 발탁돼 조직운영을 위한 규정을 새로 만들고,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조사기간 연장에 ‘승인’이라는 제동장치를 마련하는 등 노력했다.

이와 관련 그는 “지금의 납세자보호담당관실이 명실상부하게 납세자를 보호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는데 나름 거기에 일조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초대 조사상담관으로 시범운영을 하며 고생은 많았지만,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 청장은 특히 국세청 조사분야에서 세무서・지방청・국세청 조사조직을 모두 거쳤을 뿐만 아니라, 일반 조사요원부터 시작해 조사관련 반장・계장・과장・국장을 모두 경험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국세청 역사를 통 털어 보기 드문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서울청 조사국이 단일국이었던 89년엔 특별조사관실 반장을 맡아 탈세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대기업사주 등에 대한 특별조사로 많은 실적을 올렸다.

또 92년에는 서울청 조사국이 1・2국으로 확대 개편될 당시엔 2국 창설멤버로 정보관리과에서 계열법인사주 등의 주식변동상황을 체크하면서, 자료수집과 심리업무로 세금을 회피하는 수많은 형태를 찾아내 경종을 울렸다.

특히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핵심조직으로 심층조사를 전담한 서울청 조사4국과 대기업 정기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청 조사1국에서 차례로 과장을 역임하며, 세무조사를 진두지휘한 것도 그의 화려한 경력에 포함된다. 

조사4국 과장시절엔 심층조사 대상 납세자가 장부예치를 거부하는 통에 주말에도 대기하는가 하면, 강남일대 유흥업소 조사 땐 개인적인 위협까지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검찰에 고발까지 했는데 조사업체를 봐 준거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 등 말 못할 고충도 많았다.

국세청 조사국 핵심보직인 서울청 조사1국 과장과 국장시절에도 대기업 세무조사를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기업 자체가 세법에 대한 지식과 전문성이 높은데다,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에서 법률자문까지 받는 터여서 치열한 논리전쟁을 펼쳐야 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는 조사적출 사항에 대한 과세 적법성을 밝히기 위한 법리・논리적 근거를 이중삼중으로 마련, 조사국 직원들이 어렵게 이뤄낸 과세결과를 대부분 지켜냈다.

이와 관련 그는 “조사와 관련한 과세 적법성을 둘러싸고는 늘 충돌이 있게 마련”이라며, “후속 불복과정에서 국세청이 이기면 별 말이 없는데, 국세청이 지게 되면 부실과세니 하면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게 되는 부분이 조금은 아쉽다”고 소회한다.

그는 “과세고민은 국세청의 영원한 숙제고 숙명”이라며 “조사 직원들이 열심히 적출하지만 불복절차 등으로 그것이 실제 국고로까지 연결되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임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했다. 

조사분야 외에도 거쳐왔던 부서에서 그가 남겨놓은 업적은 화려하다. 국세청 감사담당관실에서 사무관으로 재직시 국세청에서 처음으로 감사업무의 균질화 및 체계화를 위해 감사업무매뉴얼을 작성・발간해서 배포한 것도 그였다.

또 감사전용 전산서버를 도입・설치, 감사업무에 활용하기 쉽게 자료를 신속하게 가공 출력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감사의 효율 및 실효성제고에도 기여했다.

서울청에서는 납세자보호담당관실조직 신설을 위해 관련 규정 제정 등 기반을 구축했고, 본청 조사2과장 시절엔 고소득자영업자조사의 실적제고와 책임 있는 조사를 위해 지방청별 실정에 맞는 사업자를 선정해 조사할 수 있도록 지방청별 심리체제도 시행했다. 

이와 함께 2011년말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도입된 일감몰아주기 증여세과세제도에 대한 2013년 첫 신고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함과 동시에 조기정착에 기여했다. 

감사관실에 근무하면서 감사체계의 효율성을 위한 개선방안 마련과 함께 5년간 감사업무를 수행하면서 지적된 사항 중 제도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개선할 사항을 정리・보고했는데, 이 중 상당수가 국세행정 개혁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되었을 정도다. 

특히 2000년대 초 벤처기업 붐이 일어날 당시 벤처기업대주주들이 주식 등을 이용한 재산증식 실태를 심도 있게 파악해 분석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당시 보고서는 조사국으로 통보돼 새로운 탈세유형을 찾고 탈세조사를 위한 자료로 널리 활용됐다.

이 청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반듯한 인상’ 때문에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차갑고 깐깐한 인물 같다”는 이야기를 이따금씩 하곤 하지만, 이후 그를 한번이라도 접해본 사람들은 그런 선입견을 금새 지워버린다. 

마주한 몇 초 안에 그에게서 ‘진실함’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주한 사람의 그 어떤 말이라도 그는 허투루 듣는 법이 없으며, 그가 받은 그 어떤 전화문자나 메일에 대해서도 일일이 자세한 답변을 내놓는 소통과 화합의 귀재다.

국세청을 떠나는 모든 간부들이 후배들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이 청장의 후배사랑은 조금은 남다른 측면이 있다. 일단 그는 후배들을 이야기 할 땐 언제나 입가에 미소부터 띄우는 버릇이 있다.

그는 “국세청에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국세청 직원들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이는 선배들이나 중부청 관내 모임 등 국세청직원을 파견 받았던 외부기관 등에서 종종 듣는 얘기”라며 굳이 국세청 직원들의 우수성에 대한 ‘객관성’을 부여한다. 

이와 관련 그는 “최근 국세청에 입사하는 신규직원들 면면을 보면 갈수록 더 우수한 자원이 들어온다”며 “이렇게 기본자질이 우수한 자원을 잘 육성해서 국세청을 이끌어 갈 사람으로 만들기에 아쉬움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였을까. 중부청장으로 부임 직후 그는 관할이 넓고 신규직원이 다른 청에 비해 과다하다는 점에 착안, 직원들의 업무 역량을 키우고 업무성과제고와 동시에 민원응대수준을 높이기 위해 상・하반기 2회에 걸친 직원역량평가시스템을 만들어 시행했다. 

이뿐이 아니다. 또 부하직원들이 보고서를 올릴 때도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무런 설명 없이 반려하는 일이 결코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그 이유와 더 나은 표현을 연필로 직접 적어주며 직원들의 업무능력 향상을 꾀하는 그다.

이 청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후배들에게 “주어진 소임업무를 제 시간 안에 야무지고 깔끔하게 처리할 것과 한번이라도 같이 근무했던 상사들과의 인연을 잘 가꾸어가는 자세를 가져줄 것”을 주문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맡겨진 업무는 책임 있게 처리해서 무슨 일이든 끝까지 마치는 확실한 직원이라는 인식을 상사에게 심어주어야 한다”며 “윗분이 원하는 시간에 야무지게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한번 같이 근무했던 상사에 대해서는 어떤 자리에 있던 인간적인 교류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조직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내세울만한 학연・지연도 없이 중부청장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선・후배들의 음양으로 좋은 평가를 해줬기 때문으로 믿는 그다.

그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의 카르페 디엠이란 말이 있다. 현재의 내 모습은 과거에 내가 어떻게 해 왔는지가 나타난 것”이라며 “미래의 내 모습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그 노력만큼 주어질 것이다. 후배들이 주어진 지금의 상황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겉으로는 상당히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 큰 어려움 없이 공직생활을 한 것 갖지만, 그에게도 분명 어려운 시기는 있었다. 

사무관까지는 무탈하게 승진했지만 특별한 지연・학연이 없었던 터라 서기관 승진 문턱에서 두 번이나 좌절을 맛볼 당시 그는 한 때 승진을 포기하고 세무사 개업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특히 지금은 건강상의 문제로 큰 고민은 없지만 지난 2008년 갑작스러운 병으로 큰 수술을 받을 당시엔 병원 입원 상태에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평소 마라톤을 즐길 만큼 건강하나 만큼은 스스로 자신했고, 별명이 ‘폭탄주’로 불릴 만큼 엄청난 주량을 자랑했던 그로서는 당시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이 자명한 일.

그러나 그가 당시 엄청난 시련을 무난하게 극복하고 힘든 국세공무원의 길을 무사고로 마칠 수 있게 된 뒤에는 언제나 그를 묵묵히 바라보고 지지해 준 가족의 힘이 컸다고 한다. 

이 청장은 전업주부인 아내 오진화 여사와의 사이에 아직은 미혼인 딸만 둘을 두고 있다. 장녀(29세)는 일반 회사에 잘 다니고 있으며, 차녀(25세)도 반듯하게 자라 취업보다는 자기만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있는 중이다.

그에게 가족이란 ‘미안함과 동시에 고마운 존재’로 각인돼 있었다. 그는 “지금은 술을 끊었지만 얼마전만 해도 폭탄주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주량도 세고 술을 좋아했다”며 “감사실 재직시 잦은 출장과 야근, 만취 귀가 등으로 집사람을 불편하게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특히 “과거 큰 수술을 받았을 땐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해 인생의 위기라고 느꼈고, 신경이 곤두서 아내에게 자주 화를 내기도 했다”며 “다행히 건강을 회복해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된 것은 무엇보다 언제나 곁을 지켜준 아내의 내조덕분”이라고 감사했다.

그는 이어 “언제나 옆에서 잘 참아주고 넓은 아량으로 받아준 집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딸들과도 업무를 핑계로 자주 소통하는 기회를 갖지 못해 미안한데, 어느 덧 훌륭하게 자라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옆에서 잘 챙겨주지 못했는데 어느새 건강하게 자라 자기 몫들을 해내려고 노력하는 두 딸이 보기 좋고, 특히 일이 있을 때마다 어른스럽게 아빠를 잘 챙기는 큰 딸과 애교로 매사를 무마하려는 작은 딸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 이 청장의 전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