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세법개정안 '졸속심의' 논란의 주범, '국회선진화법'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이 처음으로 적용된 올해 여야는 지난 2일 새해 예산안을 12년만에 법정처리 시한 내에 통과시키는 쾌거를 만들어냈다.  

법정시한은커녕 의미 없는 기 싸움을 벌이다 해를 넘겨버려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예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확실히 '의미'가 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새해 예산안 법정시한 처리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이 과연 성공적이었는가?'에 대한 의문과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논란의 핵심은 바로 자동부의제로 야기된 법안들에 대한 '졸속심사', 개별 상임위의 법안심의권을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자동부의 올가미에 걸려 국민들의 재산권과 직결되는 세법개정안 등 예산부수법안들이 얼렁뚱땅 본회의에 직행하다보니 소관 상임위가 법안의 내용을 제대로 논의하지도 못한채 표결처리되는 황당한(?) '촌극'이 연출됐다.

민생과 관련된 내용들이 담긴 세법개정안(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표결에서 무너지면서 모조리 폐기처분 운명을 맞는 결과도 빚어졌다.

국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세법에 대한 심의를 엉터리로 하면서까지 국회선진화법이 존재할 이유가 있는지, 존재해야 한다면 보완의 필요성은 없는 지,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자동부의제도' 앞 힘 잃은 상임위 = 국회선진화법은 다수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과 국회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지난 2012년 여야 합의에 의해 도입됐다. 특히 국회선진화법은 자동부의제 조항을 도입해 새해 예산안에 대한 여야의 합의를 빠르게 이끌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자동부의제도는 헌법에서 정한 예산 심사 기일을 지키고, 국회에 충분한 토론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매년 11월30일 예결위 심사 종료, 12월2일 본회의 처리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여야가 예산 심사를 정해진 시한까지 마치지 못하더라도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이 1일 0시를 기해 자동으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이유로 도입된 자동부의제 조항이 충분한 토론 기회를 주자는 취지와는 달리, 역으로 상임위의 심의권을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실제로 정부원안을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하기를 원하는 여당의 고자세에 야당이 반발하면서 지난달 30일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와 법제사법위원회 일정은 줄줄이 파행되고 말았다.

결국 시간에 쫓긴 여야의 이날 법안 처리 갈등은 상임위 차원이 아니라 지도부 간의 합의로 넘겨졌으며, 예산안 처리 몇 시간 전 지도부 간의 의견 조율로 가까스로 해결됐다. 예산부수법안들이 의원들의 심의를 제대로 거치지 못한 채 본회의로 직행한 셈이다.

이처럼 상임위의 심사 없이 법안들이 본회의에 바로 직행하다보니 관련 상임위의 심의가 사실상 없어도 그만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예산안이 통과되기 하루 전인 지난 1일, 기획재정위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윤호중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선진화법의 가장 큰 피해는 조세소위가 무력화된 것"이라고 말해 선진화법이 불러온 부작용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또 4일 "예산안과 세법 심사과정에서 본회의 자동부의라는 국회선진화법 조항이 없었으면 기재위와 조세소위는 훨씬 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서 많은 혜택을 얻어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며 재차 아쉬움을 토로했다.

조세소위 뿐 아니라 이번 예산처리과정에서 국회 상임위가 제대로 작동된 곳은 거의 없었다.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예산 및 관련 부수법안 심사를 기한 내 통과를 정해놓고 하다보니 기한을 넘기면 상임위 심사가 없어도 본회의에 직접 상정되고 지도부 수정안으로 통과가 되다 보니까 예산에 대한 상임위의 심사기능이 너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이어 "안행위는 아예 회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련 법안이 본회의로 직행했다"며 "이 부분은 한번 고려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의화 국회의장 역시 "예산부수법안은 상임위에서 바로 토론을 하고 마무리지어 법사위를 통해 마무리를 지었으면 좋았다"며 "앞으로 보완을 해가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무기력한 야당, 돌파구는 있나? = 국회선진화법의 맹점은 야당이 끝내 합의를 거부할 경우에도 여당은 이를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당의 태도에 정부 또한 배짱을 부리며 야당의 요구에 귀를 닫기만 하면 된다.

여당이 법안심사를 위한 소위 재개를 거부해 '버티기' 모드로 돌아서면 정부 원안이 조세소위나 법사위 등을 거치지 않고 본회의로 직행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예산심사 과정에서 야당 측의 특정 분야 예산 증액 요구를 묵살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과반 의석을 가진 여당은 본회의에서 예산부수법안을 정부 원안대로 처리하거나 수정동의안을 제출해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급할 것이 없다.

급한 건 야당이었다. 하지만 야당은 담뱃세 인상, 누리과정 예산 등에 한눈을 팔다 이 같은 사실을 간과하면서 완전히 페이스를 잃고 사실상 정부와 여당에 끌려가버린 셈이 됐다. 

4일 새정치민주연합은 선진화법 시행 첫해를 거치며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뒤늦게나마 새누리당에 선진화법 개정을 제안했다.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장은 이날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예산심의 과정에서 국민의혈세를 다루는 조세소위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파행이 진행됐고 무력화됐다"며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그는 이어 "자동부의제도를 악용한 정부여당의 오만 때문이다. 합리적인 제도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예산안의 조속한 처리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에게 세금을 어떻게 얼마나 걷는 일은 실제 국민생활과 가장 밀접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세밀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소한 세금문제와 관련해서는 '늑장국회'보다 '졸속국회'가 국민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클 수있다는 소리다.

서복경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2달 동안에 예산본안과 부수법안을 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소한 9월부터 3달 정도를 확보하고 심의를 한다든지, 부수법안을 직권상정이 아니라 여야합의 대상으로 바꾼다든지 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법심의는 국민의 지출과 관련된 부분인데. 양당의 심의 없이 통과시키는 제도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