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 회계법인 채용 마감…총 770명 입사
로컬 기피현상 뚜렷…"채용정보 믿기 힘들어"
지난 10여년 간 회계업계의 고민으로 남아있는 공인회계사 미지정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날 EY한영을 마지막으로 4대 회계법인(삼일PwC, 딜로이트 안진, 삼정KPMG) 신입사원 예비소집이 끝났다.
공인회계사(CPA) 시험 합격생들은 횟수 제한 없이 원하는 회계법인에 입사원서를 제출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중복 합격생들이 배출되기에, 대형회계법인들은 대부분 한날한시에 예비소집을 함으로써 최종 입사자를 결정짓는다.
문제는 어렵게 시험에 통과하고도 길게는 수년 간 입사를 하지 못해 '미지정' 상태로 남아있는 합격생들이 더러 있어 회계사 지망생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CPA합격생이 '공인회계사'로 인정받으려면 지정된 연수기관에서 최대 2년 동안 수습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수기관은 대형회계법인, 로컬(중소형)회계법인, 공기업 등으로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합격생들은 '빅4'회계법인 입사를 통해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어 한다. 자리는 한정된 상황에서 합격생끼리의 '2차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올해 빅4 회계법인들은 총 770명의 신입직원을 채용했다. 이는 제49회 CPA합격생 수의 86.9%에 달하는 규모지만, 이 안에는 작년 이전 합격생도 포함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한국공인회계사회 통계를 참고하면 조금 더 윤곽이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지난 3년 간(표 참고) 연평균 196명이 미지정 회계사로 남아왔다. 이 중에는 군 복무 혹은 해외유학 등을 위한 '자발적 미지정'도 포함돼 있지만, 최소 수십명에서 백명 단위의 합격생들이 '비자발적 미지정' 상태인 것으로 추산된다.
그렇다면 CPA합격생들이 중소형회계법인 및 일반기업 등 다른 진로를 놔두고 굳이 4대 회계법인 입사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대형회계법인에 입사한 김승도씨(21세. 가명)는 "미지정 문제는 매년 발생하고 있다. 물론 로컬에 입사할 수는 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같은 시험을 통과했는데 누구는 4대 회계법인에 가고, 누구는 못했다는 시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CPA합격발표(8월)가 추석 직전에 나오는 만큼, 친지들의 기대감이 한껏 높아진 상황에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회계법인에 입사했다는 말을 꺼내기 힘들다는 전언도 들린다.
익명을 원한 현직 회계사는 "일부 로컬들이 빅4에 탈락한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입사를 시켜 놓고 나중에 연봉도 후려치고 출장경비도 안주는 경우도 많다"며 "예컨대 연봉 4000만원을 준다고 해놓고 나중에 보니 퇴직금 등을 포함한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고 지적했다.
대형회계법인 관계자는 "경력을 어디에서 시작하느냐가 마지막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취업재수를 택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로컬에서 시작하면 빅4에서는 경력을 깎는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금융당국에서는 회계사들이 일반기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기업들이 원하는 사람은 감사경력이 있는 인물"이라며 "신입들은 이제 막 원론공부가 끝난 것이라 뽑힐 일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기업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3년차 이상 직원들"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이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CPA시험 시행처인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공인회계사 시험은 취업이 보장되는 국가고시가 아니라 단순한 자격시험이다. 대형회계법인 4곳에서 전체 합격생의 70% 이상을 흡수한다는 것은 다른 시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고 반박했다.
덧붙여 "합격자를 늘리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는 일부 합격생들이 금감원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는 갑작스러운 정책변화로 인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요즘 수험생들은 회계사 취업난을 충분히 알고서 공부를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이 같은 불만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젊은 회계사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단체인 청년공인회계사회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컬회계법인에 대한 채용정보를 공개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중소형사들은 대형회계법인에 비해 관련 정보를 획득하기 힘들기 때문에 취직 시도 자체가 드물다는 시각이다.
이총희 청년회 회계사는 "최근 중소형회계법인들에 일일이 메일을 보내서 채용정보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로컬은 소규모 조직이다 보니 관련 정보를 획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일각에서는 '로컬 줄세우기'가 아니냐고 반발하지만, 구직자 입장에서는 줄을 세워서라도 안 좋은 곳이면 제외를 해야 한다"며 "결국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는 차원이다. 그렇게 되면 취업준비생들이 로컬회계법인에 더 많이 지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