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납세의무를 지근거리에서 조력하고 '세무조사'라는 강력한 권한을 바탕으로 '클린 대한민국' 건설의 역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국세공무원.
전국적으로 2만명에 육박하는 국세공무원들은 전국 8도(道) 구석구석에 흩어져 지금 이 시간에도 낮은 곳에서 남몰래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다.
사실 국세공무원은 일반적인 공무원과는 다소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세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물론 세금 징수권한을 쥔 '전문관료(테크노크라트)'로 분류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국세청 근무는 직급의 고저(高低)를 떠나 엘리트의 범주에 속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국세공무원이라는 존재 자체가 전해주는 위압감(?)은 상당하다. 여러 측면을 고려하면 국세공무원들 입장에서 볼 때 하나의 직업으로서 국세공무원 타이틀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져도 무방할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국세공무원들의 생각은 일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존재하는 모습이다.
조세일보(www.joseilbo.com)가 지난달 7일부터 18일까지 서울지방국세청 산하 일선 세무서 직원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국세공무원 의식조사) 결과, 국세청의 하부조직인 일선 세무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하위직 국세공무원 상당수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변 지인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밝히는 것 조차 피하고 싶어하는 국세공무원들이 상당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 사람들 앞에서 작아지는 나, '국세공무원' = 임환수 국세청장은 지난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세청장에 취임하면 고위공무원단 간부들에게 '국세청의 위기는 항상 고공단의 부적절한 처신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선언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1일 취임식 단상에 선 임 국세청장은 "입으로만 이야기하고 귀로만 듣는 청렴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태도가, 그리고 행동이 바뀌는 청렴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국세청의 위기는 항상 고위직으로부터 왔다"고 강한 경고음을 보냈다.
국세청 고위직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조직원들에게 미친 영향은 결코 긍정적이지가 못하다.
조세일보가 서울국세청 산하 일선 세무서 직원 300명에게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국세공무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중 52.3%인 162명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특히 '누군가에게 내 직업을 밝히는 것이 꺼려지거나 가족 또는 지인 등이 불편해했던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설문 응답자 300명 중 65.7%인 204명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자신의 직업을 감추고자 했던 경험을 가진 국세공무원들이 밝힌 남 앞에서 작아졌던 이유는 국세청 고위간부들의 반복되는 비리사건 때문이라는 답변이 대다수였다.
실제로 국세청은 지난해 송광조 전 서울국세청장이 금품비리에 연루, 불명예 퇴진했으며 2000년대 이후 취임한 국세청장 7명 중 4명이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고 이 중 3명은 유죄판결을 받아 옥살이를 하는 등 조직적 망신을 산 바 있다. 이외에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고위직은 물론 중간 간부급에서도 크고 작은 비리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해 오고 있다.
국세청의 '밑바닥 정서'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은 언론에서 비리에 연루된 국세청장 및 고위간부에 관한 기사가 보도될 때마다 주변의 시선이 의식되고 자신이 국세공무원이라는 것에 대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입을 모았다.
설문에 응한 모 세무서 직원은 "언론에 국세청 관련 금품수수 뉴스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며 "주변에서 나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할까봐 부끄럽다"고 전했다.
이어 "국세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비해 나아진 것이 없다.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 고위직들의 이런 행태 때문에 일할 의욕도 안 생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도 "국세청 관련 비리사건이 보도되면 직업을 밝히기가 꺼려진다"며 "(평소)처음 보는 사람들이 직업을 물어보면 그냥 일반 회사원이라고 소개한다"고 했다.
세금과 관련된 문제해결을 부탁하거나 세금과 관련한 고민 및 상담요청이 너무 많다는 점도 직업을 숨기고 싶은 이유 중 하나라는 직원들도 있었다.
한 직원은 "국세공무원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주위에서 계속 세무상담을 요청해 온다"며 "세금을 얼마 내야하는지 계산해 달라는 사람도 많아서 직업을 알리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도 "주변에 직업을 밝힌 후 업무와 관련된 부탁을 수 차례 받았다. 그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직업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 사람들 앞에 당당한 나, '국세공무원' = 음(陰)이 있으며 양(陽)도 있는 법. 설문 응답자의 47.7%인 143명은 '국세공무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자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국가재정 확보의 일익을 담당하는 막중한 소임을 맡고 있다는 정체성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한 일선 세무서 직원은 "국가 재정 확보에 일익을 담당하며 공평과세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납세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조력하며 재정역군으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이와 함께 국세공무원으로 일하며 세법 및 세무행정과 관련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한 직원은 "국세공무원은 타 공무원에 비해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면서 "스스로 공부해가며 성장하는 것이 보람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도 "국세의 부과징수라는 전문적인 업무를 한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업무에서 익힌 세법지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말했다.
한편 "나이가 많은 노인들의 부가가치세 신고 업무를 도와주고 고맙다는 얘기를 들을 때 보람이 있다"거나 "탈세자를 끝까지 추적해 조세정의를 실현할 때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 직원들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