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직원이 사무관(5급)으로 승진하기까지 평균 31년이 걸린다고 한다. 25세에 국세청에 임용되면 56세에 사무관이 된다는 말이다"
지난 18일 열린 임환수 국세청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은 국세청 내부의 '고질병'으로 여겨지는 비고시 출신 직원들의 인사적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지역논리에 따라 고위직공무원의 '지역(대구·경북)편중인사' 문제만 부각시킨 다른 의원들과 달리, 비고시 출신 직원들의 인사문제를 거론한 박 의원의 지적에 임 국세청장은 "그것(직원들의 사기진작)이 국세청장의 가장 큰 임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새롭게 부임한 임 국세청장의 국세행정 운영 플랜에 국세청의 인사적체 문제, 나아가 하위직 직원들의 사기진작 문제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승진은 커녕 승진시험 기회를 얻는 것조차 '하늘의 별따기'라는 일선 세무서 직원들의 눈과 귀가 임 국세청장의 향후 행보에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진 것이다.
임 국세청장은 이날 인사문제 외에도 모두발언을 통해 '본·지방청 슬림화'를 제시하며 일선 세무서 직원 비중을 확대할 방침임을 밝혀, 극심한 인력난에 빠진 일선 현장에 활기를 불어 넣을 것을 예고했다.
□ "해도 해도 너무한 '본청편중인사'" = 일선세무서 직원들은 지난 19일 임 청장의 인사청문회보고서가 채택됐다는 소식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본청편중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임 국세청장이 임기동안 이 문제만큼은 반드시 해결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특히 사무관 승진을 앞둔 6급 직원들은 그동안 있어 온 극심한 본·지방청 위주의 승진 인사에 '배신감'까지 느낄 정도라며 일선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4년 8월 20일 기준 국세청 총 정원은 2만72명. 이중 24.9% 에 해당하는 인력이 본청(4.3%)과 6개 지방국세청(20.6%)에 배치되어 있다. 대다수의 직원이 일선(74.1%)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단행된 사무관 승진인사를 살펴보면 204명의 사무관 승진자 중 일선 세무서에서 승진한 인원은 40명(20%)에 불과했다. 국세청 총 정원의 4.3%를 차지하고 있는 본청에서 53명의 승진자가 배출된 것과 비교하면 턱 없이 부족한 수치.
이에 대해 한 일선 직원은 "사무관 승진 뿐 아니라 6급 이하 직원 전체가 겪는 고충"이라며 "일반 공채로 국세청에 들어와 일선 세무서에 일하게 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길이 없다. 지금 일선에서는 일하는 이유조차 모르고 기계처럼 일하는 직원들이 상당수"라고 처참한 심정을 전했다.
승진기회조차 없었다는 다른 일선 직원은 "국세청인사사무처리규정이 헌법(기회균등)이나 대통령령보다 위에 있는 것이냐"고 따져 물은 뒤 "체납에 대한 고충과 승진 안 되는 것이 소문나 국세공무원의 인기는 이미 학원가에서도 떨어져있다고 한다. 지원자가 없어 요즘은 면접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30년 가까이 본·지방청의 수족이 되어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하는데 너무 허탈하다. 본·지방청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나, 일선 직원들도 상대적으로 작을지언정 노력에 대한 보상은 어느 정도 받아야 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내달) 사무관 승진도 본청 직원 위주로 편성됐다고 이야기가 파다하다. 일선 직원들 사이에선 김덕중 전 국세청장이 갑자기 퇴임하면서 본청에 선물을 주고 간 것이라는 후문까지 돌 정도"라며 "새로 부임한 임 국세청장이 일선 직원들의 고충을 꼭 좀 헤아려 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시기를 놓치면 승진은 물 건너가기 때문에 2~3차례 승진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직원들은 일찌감치 승진을 포기하게 되고, 이 부분이 직원들의 '근무태만'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일선 직원은 "국세청 승진은 암암리에 나이제한이 있어서 시기를 놓치면 끝이다. 예를 들어 '올해 사무관 승진 커트라인은 59년생' 이런 식"이라며 "승진에서 멀어졌다고 느낀 직원들은 더 이상 업무에 의욕을 갖지 못하고 퇴직생각만 한다. 베테랑 직원을 한 해에 몇 명을 잃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각 급마다 TO가 정해져 있어 승진이 적체되는 부분은 전체 공무원 조직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일선 승진자 비율 확대와 나이제한 폐지 등은 국세청 내부에서 개선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임 국세청장이 일선 직원들의 사기진작에 힘써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 "10명이 해야 할 일, 7명이 한다" = 국세청 관계자들은 일선 직원들이 승진에 불만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업무량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체감하는 업무강도는 예전보다 월등히 높아졌지만 승진비율은 크게 변함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이처럼 업무강도가 높아진 데에는 육아휴직, TF팀 차출 등으로 인한 직원들의 공백이 한 몫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일선 직원들은 "세무서의 결원률이 20%에서 많게는 30%에 달한다. 지금 일선은 인력충원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임 국세청장이 본·지방청을 슬림화하겠다고 밝혔는데 일선이 현재 겪고 있는 고충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일선 직원은 "여직원들의 비율이 높아 출산, 육아 휴직을 많이 하고 있다"며 "10명이 해야 할 일을 7명이 하니까 아무래도 일이 많다. 세수부족으로 인해 체납업무가 강화되다 보니까 개인 업무량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결원이 많기 때문에 업무량에 비해 직원 숫자가 너무 적어 과부하가 걸리고 있고 그런 부분들은 서울국세청장 출신인 임 국세청장도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인사청문회에서 일선 현장에 직원들을 투입하고, 본·지방청 인원을 줄이겠다고 했는데 일선 입장에서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육아휴직 등으로 일선 현장에 배치된 직원 상당수가 빠져나가면서 일선 세무서는 규모 여부를 떠나 적지 않은 인력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아울러 지난해 초에는 일선 세무서 인력 400여명을 본·지방청 세무조사 및 체납징수 업무에 투입하면서 일선 현장의 인력부족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한편, 납세서비스역량 제고를 위해 일선 세무서도 외부인력 충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일선세무서 직원은 "고충상담, 민원처리, 경정청구 등 일선 납보관실에서 하는 일이 다양하고 본·지방청이야 여유 있는 납세자들이 찾지만 일선을 찾는 납세자들은 대부분 영세하다"며 "일선도 납보관실에 대해 개방직을 논의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세청 조직이 아직 폐쇄적인 면이 있지만 일선도 전문가 등 외부인력충원을 통해 납세자 권익보호 업무를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