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이 하는 일은 수출입 통관, FTA 이행, 관세심사 및 조사, 마약밀수 단속, 품목분류 등 무수히 많지만 역사자료를 파헤쳐 조사하는 일은 기본업무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그런 일을 하는 세관공무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적인 유물에 대한 조사는 학계나 관련 기관 등에서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런 편견을 깨는 세관공무원이 있다.
사실 세금이란 것은 역사와 뗄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중요한 근간이었지만 세관에 근무하면서 자신이 속한 조직의 역사를 파헤치면서 유물과 유적을 조사하는 공무원은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서울세관 김성수 관세행정관(사진)은 본인의 기본업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여가시간이나 휴일을 틈틈히 활용해 옛날 해관(세관)의 문서를 번역, 우리나라의 유물로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김 행정관은 14일 조세일보(www.joeilbo.com)과의 인터뷰에서 "구한말 우리 해관(세관)이 우리나라 근대사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해 왔으며 중요한 기관이었는지를 일반에 널리 알리게 되어 뿌듯하다"며 "국사책에 해관이 당당히 기술될 수 있는 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세관 역사학자 납시오" = 김 행정관은 1986년 대구세관에서 처음 관세공무원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뒤 벌써 28년째 관세맨으로 살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관세청에 몸을 담았기에 조직에 대한 애착도 클 것이라 생각하지만 김 행정관은 의외에 답변을 내놓았다.
김 행정관은 "부끄럽지만 오랜 기간을 근무하면서 관세청과 세관조직에 애착을 갖게 된 것은 불과 7~8년 전"이라며 "우연히 세관의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오래 전 기록유물과의 만남이 제 생각을 바꿔 놓았다"고 털어놨다.
지난 2006년 우연한 계기로 김 행정관의 눈에 든 'Despatches from Chemulpo'라는 제목의 유물은 조선해관이 창설되던 시기부터 2년 동안 인천해관에서 총세무사에게 발송한 공문서를 편철한 것이었다.
그동안 제대로 된 보관시설이 없어 거의 방치가 되다시피 했던 유물이었던 탓인지 전체적으로 문서들이 조각조각 찢어지는 등 상태가 매우 나빴고 일반 공개가 되지 않았던 탓에 문서의 소재를 아는 사람도 이를 연구한 사람도 없었다.
이를 알게 된 김 행정관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역임)에게 알려 학계에 보고하는 한편, 관세청에 보존처리를 건의했고 결국 관세청 사업으로 선정됐다.
이후 뜻있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가운데 번역까지 이뤄져 그 성과물이 전국 주요 국공립도서관에 배포됐고 유물 원본은 서울시로부터 지정문화재로 선정되는 경사를 누렸다.
이를 계기로 김 행정관은 꾸준히 옛날 자료를 찾거나 우리나라에서 사망한 외국인 해관원의 묘를 발견해 기념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에는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장소에 대한 그간의 학설을 모두 부인하는 연구논문이 모 일간지에 특종 보도, 사학계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 수출효자 '휴대폰' 위기맞았던 사연은? = 김 행정관이 역사에 푹 빠졌다고 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천억원의 손해를 볼 뻔한 우리나라 기업을 구제해준 것만 보더라도 김 행정관은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김 행정관이 관세평가분류원에서 품목분류 업무를 하던 지난 2009년 수출 효자종목으로 통했던 휴대폰이 격변기를 맞기 시작했다. 전화와 문자메세지 단순한 기능에 더해 텔레비전, GPS, 카메라 등의 기능이 휴대폰과 일체화되는 과정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휴대폰은 단순한 전화기능 뿐 아니라 사진촬영 기능, 내비게이션, GPS, DMB, MP3에 다양한 어플까지 사용가능하면서 만능기기로 통하게 됐다.
하지만 사용하기 편리한 똑똑한 '스마트폰'이 품목분류를 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골칫거리로 다가왔다. 카메라, 텔레비전, 인터넷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휴대폰을 무엇으로 분류해 세금을 어떻게 납부할지 문제로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DMB기능은 출시 당시부터 폭발적 인기를 끌었고 수출에 청신호가 켜졌을 때 사단이 났다. DMB칩이 내장돼 TV신호가 수신되거나 GPS칩이 내장돼 내비게이터 기능 등이 부가되는 경우, 각각 TV(관세 14%) 및 GPS(관세 3.7%) 등으로 판단하고 관세를 추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에 분류원에서는 우리나라 기업을 전략적으로 돕기 위해 일명 'HIT팀(국제품목분류 분쟁해결 전담지원팀)'이 구성됐고 무려 1년3개월 동안의 끈질긴 협상을 통해 해당 휴대폰에 대한 품목분류를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됐다.
김 행정관은 "이는 우리나라 전 언론에서 주요 기사로 다룰만큼 파급력이 컸다. 단일 건으로 연간 관세절감액이 1560억원에 달했을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었다"며 "별로 상관이 없던 외교통상부에서 이것을 자신들의 공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인터뷰를 하는 등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났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업무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를 하는 김 행정관은 세관에 재직하는 동안 '지식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 행정관은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을 가슴에 담고 기꺼이 지식의 사냥꾼 되도록 하겠다"며 "이런 소신으로 지식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관세행정에 이바지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