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 맞춤 서비스, 정부 간 소통을 위한 '정부 3.0', 국민들과 기업들의 고충을 해소하기 위한 규제개혁 등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과제는 다양하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대부분 냉소적이다.
국민들의 대부분은 공무원들이 '탁상행정'과 '철밥통'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더해 세월호 사고가 터지면서 이런 인식이 더욱 팽배해졌다.
공무원들이 아무리 '규제개혁'이라고 외쳐도 국민들은 '저러다 말겠지. 얼마나 가겠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이런 국민들의 시선에 힘이 드는 것은 민원인을 직접 상대하는 일선 공무원들이다. 규제개혁 과제를 발굴하려 의견을 물어보려하면 국민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며 잘 대답해주지 않는다.
청주세관 장현주 관세행정관도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차가운 반응에 발길을 돌려야 할지, 억지로라도 규제개혁 과제를 짜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장 행정관은 3일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인터뷰에서 "규제개혁 과제 발굴에서 중요한 것은 규제를 피부로 느끼고 있을 외부 고객들의 의견이었지만 다들 냉소적 분위기가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장 행정관은 "제대로 된 규제개혁이나 혁신이 되려면 외부고객을 우리의 지원군으로 만들어야 했다"며 "그래서 우리 세관 최대고객인 관세사나 보세공장, 수출입기업 등 고객중심의 고품질 규제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기업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규제개혁을 펼칠 것이라고 다짐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을 계속 이어나갔다"고 말했다.
□ 포기하지 않고 규제개혁 GO! GO! = 민원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장 행정관이 택한 방법은 '인내'와 '끈기'였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장 행정관은 세관을 방문하는 업체 담당자가 관세사 사무소 직원을 만나면 불편한 점이나 불합리한 규정이나 절차는 없는지 일일이 물어봤다.
또한 세관장과 함께 '찾아가는 규제탐사'라는 슬로건 하에 기업현장을 방문해 어려운 점은 없는지 들어보는 등 국민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장 행정관의 특유의 친화력도 많은 도움이 됐다.
장 행정관은 세관 내에서 활기찬 직장분위기 조성을 위한 거꾸로멘토, 세대공감 TALK, 사랑의 미역국 끓여주기, 재능기부, 일과후 독서토론, 전직원 동참 영화감상 등 갖가지 활동을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
장 행정관이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관세사무소 직원과 업체 직원들이 개선됐으면 하는 관세행정 내용을 간단히 쪽지에 써서 전해주거나 전화를 주기도 했고 이를 계기로 관세사협회, 보세공장 등 관세행정 파트너와 협업을 통한 민·관 합동 규제개혁 추진단 발대식을 개최하게 됐다.
장 행정관은 "현재까지 47개의 과제를 발굴한 성과를 이뤄냈다"며 "발굴된 과제에 대해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과 함께 깊이 있는 토론을 나누면서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규제개혁안을 제출했을 때 담당업무에 대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장 행정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 발굴 과제는 피혁가공업체의 사례.
이 업체는 세관장 확인대상인 야생생물보호법 해당 여부에 대한 확인 때문에 수출통관이 지연돼 불편을 겪고 있었다. 수출품의 품목번호가 야생생물보호법 확인대상에 해다돼 야간이나 주말에도 직원이 대기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들은 장 행정관은 여러 곳에 자문을 구했고 품목번호에 따른 요건확인과 병행해 업체별 관리방식을 도입해 수출횟수 및 성실도에 따라 차등해서 관리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장 행정관은 "일률적으로 수출입물품의 품목번호에 따라 세관장확인대상 요건을 확인하는 시스템이다보니 세관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기업입장에서는 큰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사례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메마른 펌프에서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먼저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을 마중물이라고 한다"며 "저의 작은 출발이 마중물이 돼 관세행정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얻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 "가족이 자랑스러워하는 관세인 될 것" = 지난 2003년 관세청에 처음 발을 들여 현재까지 11년 동안 일하면서 남편과 아이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항상 미안하다는 장 행정관.
6살 딸이 "엄마가 일하는 세관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이냐"라고 물을 때면 마음이 짠해지기도 하지만 저 물음에 대답해주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출산과 육아 문제 등으로 직장여성이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지만 장 행정관은 섬세하고 꼼꼼한 여성이 오히려 세관 업무에 딱이라고 자부한다.
장 행정관이 이런 생각을 갖는 이유는 휴대품을 검사하던 인천공항세관에서의 기억 때문이다. 장 행정관이 여행자 휴대품을 검사하던 당시 홍콩에서 온 여행객이 핸드캐리 가방을 엑스레이(X-Ray)검색기에 투입하는데 화면상에 가방바퀴가 녹색이나 파랑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나왔다.
그냥 무심결에 지나칠 수 있었지만 장 행정관은 상사에게 보고했고 가방바퀴에 은닉한 금괴 4kg을 적발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위장된 쿠키를 뜯어 대마초를 적발한 일도 있었다. 검사대상을 선별하던 중 미국에서 온 소포의 수화인 이름이 이니셜로 돼 있는 점을 수상히 여겨 엑스레이 검사를 해봤다.
담당 직원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계속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장 행정관은 나중에 민원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뒤로하고 과장봉지를 뜯었다. 그 안에는 말린 쑥 같은 식물이 들어있었고 난생 처음 맡아보는 냄새에 장 행정관은 머리가 어지러워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고 한다.
알고보니 그것은 대마초였고 특송물품으로는 양이 꽤 많은 240g이나 됐다.
장 행정관은 "세관에는 여직원들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여성특유의 섬세함과 세심함을 장점으로 살려서 소통과 공감에 능한, 직선보다는 곡선을 닮은 직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가족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관세공무원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고 항상 자긍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며 "관세행정에 대한 전문성을 기르는 동시에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관세인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