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발언으로 촉발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집권 2년차를 맞아 경제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는 대기업들에게 족쇄가 되는 규제를 풀어 투자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다소 거친 표현을 써서라도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말대로 규제는 암덩어리고 없어야 좋은지는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규제와 경제적 규제를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규제는 오히려 강화할 필요가 있고 경제적 규제는 큰 틀에서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은 경제적 규제에 초점이 모아져야 함에도 무분별하게 모든 규제를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로 몰아세우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선령 규제완화정책을 지목하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이같은 내용의 규제완화는 규제만능주의만큼이나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효율성만을 중시하면서 규제가 필요한 부분을 등한시 할 때 사회는 보다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교훈을 지난 사건을 통해 배웠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이같은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을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나쁜 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일화 중 하나로 중소 건설업체 사장의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건설업을 하면서 첫 삽을 뜨기까지 1천 여 장의 서류가 필요하고 관련 부서에서 도장을 다 찍고 나면 1년여 가까이 걸린다는 경험담을 통해 우리 행정의 어두운 면목을 드러낸 바 있다.
과거 행정규제로 기업하기 어려운 시절에는 행정절차를 밟는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공공연하게 급행료를 내던 시기도 있었다. '규제 있는 곳에 부패 있다'는 말은 규제가 공무원의 부패와 밀접하게 연결됐음을 보여주는 언표였다.
규제와 부패의 연결고리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 중에 정보의 불균형이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세월호의 경우를 보더라도 탑승객들은 세월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반면 세월호의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세월호가 최근에 개·보수한 사실과 이로 인해 무게중심이 상당히 올라가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상당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보 불균형을 정부의 행정서비스와 규제로 해소해야하는데, 관리 감독을 맡고 있는 공무원이 규제를 포기하거나 뇌물을 받는 순간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큰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에 빠진다.
자본주의의 번성과 함께 형성된 시장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해결해주리라는 믿음도 독점의 폐해와 정보 불균형에서 오는 모럴헤저드 등으로 많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키면서 시장이 결코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회의감으로 약해졌다.
대공황 이후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이 강화되고 시장에 대한 규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나라, 모든 정부에서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 개입이 오히려 시장의 효율성을 잠식하는 측면이 드러나고, 규제가 부패와 어우러져 관료주의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시장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게됐다. 시장실패만큼이나 정부실패에 대한 반성이 대두되면서 다시 정부실패의 대안으로 민영화 등 시장주의가 주도권을 잡게 됐다.
규제 문제는 이런 역사적인 맥락에서 접근해야 올바른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규제와 경제적 규제를 구별하고, 우리에게 아직 필요한 규제와 이제는 불필요한 규제가 무엇인지 차분한 논의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시스템을 정비하기 위해서는 위기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코카콜라 부사장 밀든 홀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규제와 규제완화, 어느 것이 암덩어리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