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바람 탄 공정위, '와인 인터넷 판매' 재추진?

지난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이 한 판 제대로 붙었다.

청와대가 중재에 나섰을 정도로 두 부처의 기싸움이 치열했다.

당시 공정위와 국세청이 씨름을 벌였던 이유는 와인의 인터넷 판매 허용 문제 때문이었다.

첨예한 대립 끝에 공정위가 입장을 접고 논의 테이블에서 철수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다 지난 일을 지금 다시 꺼내든 이유는 최근 주류 산업 규제와 관련한 심상치 않은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세기가 강한 '규제개혁' 바람이 불고 있다.

경제활성화를 가로막는 손톱 및 가시와 같은 규제들을 획기적으로 혁파해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고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큰 그림이 그려졌다. 대통령이 '끝장토론'을 주재하며 시장의 목소리를 듣고 규제개혁에 소극적인(?) 관료들을 다독여 성과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와중에 공정위가 2년 전 무산됐던 와인 인터넷 판매를 재추진할 의사를 내비치면서 2년 전 논란이 재점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노대래 공정위장은 지난 8일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와인 인터넷 판매 불허야 말로 규제다. 그런 규제는 완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를 와인 인터넷 판매 재추진 의지로 무작정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공정위가 언제든 틈새를 파고들어 이 문제를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을 가능성이 열린 것으로 해석할 소지는 충분하다.

다시 시계를 2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반(反)FTA 여론 형성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10년에도 공정위는 이 문제를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은 전력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유야무야 됐다. 2년 뒤인 2012년, 공정위는 획기적인(?) 논리를 덧붙여 재추진에 나섰다. 칠레, EU 등 주요 와인 생산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가 발효되면서 관세가 인하됐음에도 불구, 고점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와인가격을 낮추자는 논리였다.

국내 와인 애호가들이 증가하면서 가격 불만이 형성됐고 유통구조 변화를 통해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FTA효과가 반감되고 결과적으로 반(反)FTA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는 논리도 깔려 있었다.

국민편익 측면에서 볼때 공정위의 논리는 수긍이 갈만한 대목이었다.

하지만 정작 큰 산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주류 인터넷 판매는 일부 전통주류를 제외하고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정부가 주류 제조와 유통 전 과정에서 촘촘하게 규제망을 펼치고 있는 이유는 국민편익을 떠나 무분별한 주류 유통에 따른 폐해(국민건강, 탈세)가 더 크기 때문이다.

엄연한 주류인 와인의 가격을 낮춘다는 목적으로 무한자유가 허용되는 인터넷망에 판로를 만들자는 논리는 주류 산업 규제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인 정책노선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다.

여기에 반(反) FTA 여론 형성 가능성이라는 논리까지 덧붙이면서 공정위가 이 문제에 '정치'를 끌어들였다는 비판여론까지 촉발시켰다. 실제로 이 문제를 놓고 공정위와 국세청이 본격 대립을 전개하던 그 해 3월15일, 한미FTA발효로 인한 정치적 논쟁이 가열되고 있었다.

전통주 인터넷 판매가 전통주 부흥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국내에서 생산되는 맥주와 소주 등은 인터넷 판매가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외산 주류인 와인만을 가지고 인터넷 판매 허용을 운운한 부분도 부메랑으로 작용, 결국 공정위가 논의 테이블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규제개혁 바람 탄 공정위, '물타기' 시도?

현재로서는 공정위가 와인 인터넷 판매 허용 문제를 재차 꺼내들 명분은 빈약하다. 2010년, 2012년과 달리 수입 와인 가격이 상당폭 하락했고, 일반 국민들도 할인마트 등에서 1만원대의 저렴하고 질 좋은 와인을 손쉽게 구매해 마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가격이 비싼 와인의 경우 수요층이 제한적(부유층)이라는 측면에서 공정위가 '가격인하'만을 명분으로 이 문제를 재추진 할 경우 부유층 지원이라는 곱지 않은 시각을 형성시킬 가능성도 짙다.

주류 업계 안팎에서는 공정위가 이 문제를 재거론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최근 범정부 차원의 규제개혁 기조가 공정위의 '야성'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분위기에 편승, '물타기'를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대래 위원장의 최근 발언도 여전히 공정위가 이 문제에 대해 기존의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주류 업계 및 전문가들의 입장 또한 2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낡고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는 풀거나 현실성 있게 개선하는 것이 맞지만 개혁분위기에 휩쓸려 일정한 수준의 강도를 가져야 할 규제마저 섣불리 풀거나 개선 대상으로 몰아 여론 심판대에 올려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주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와인 인터넷 판매를 허용할 경우 형평성을 고려해 맥주와 소주, 위스키, 사케 등 전 주류도 허용해야 한다"며 "주류의 인터넷 판매가 허용될 경우 살려야 할 전통주 시장이 더욱 어려워지고 주류 도소매업자들의 반발도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유럽 등이 와인 인터넷 판매로 유통마진이 빠지면서 가격이 싸다는 논리도 있지만, 이는 유럽 입장에서 와인이 전통주로 분류되기 때문에 허용한 측면이 크다"며 "우리나라 입장에서 와인은 전통주도 아니며 정부 부처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 특혜를 부여하거나 보호해야 할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주류 규제 총괄 부처인 국세청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더 이상 재론의 가치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미 2012년 허용 불가로 결론이 난 부분이다. 통제가 힘든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롭게 와인이 판매될 경우 여러 문제점이 발생해 득보다 실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국세청은 현재 등록규제 중 특별히 불합리하고 과도한 규제에 대해서만 개선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