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상속·증여세(이하 상증세)가 축소 또는 폐지되어가는 추세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최고세율이 50%에 달합니다. 이는 OECD 국가의 상속세 최고세율 평균 26.3%의 2배에 가까운 세율이죠.
이 때문에 높은 세율의 상증세가 탈세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치명적인(?) 상증세를 피하기 위한 방법은 날로 다양해져가고 있습니다. 조세피난처에 자금을 숨겨두기도 하고, 상속세 공제 한도 내에서 여러 차례에 나눠 사전증여를 하기도 하죠.
최근에는 보험을 이용해 증여를 시도한 사례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남편 소득으로 자신의 저축성보험료를 납부하는 방식으로 증여를 시도하다 과세관청에 덜미를 잡힌 A씨의 사연을 소개하겠습니다.
□ 남편 소득→A씨 계좌→A씨 보험 = A씨의 남편 B씨는 해외에서 잘나가는 사업가였습니다. B씨는 자신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국내에 있는 아내의 계좌로 입금시켰고, 아내 A씨는 이 중 일부를 자신의 보험료로 납부했죠.
기쁨도 잠시, 1년 뒤 B씨는 세무조사라는 날벼락을 맞게 됐습니다. 세무조사로 B씨의 거래는 낱낱이 파헤쳐졌고, 그 과정에서 B씨가 아내에게 소득을 송금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과세관청은 A씨의 계좌가 실질적으로는 B씨의 차명계좌라고 판단해 다시 B씨에게 환원할 것을 처분했고, B씨는 아내의 계좌를 자신의 명의로 전환하는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과세관청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아내 A씨가 계좌로부터 자신 명의로 가입한 보험에 납부한 보험료에까지 증여세를 부과했습니다.
소득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세금이 부과됐다는 사실에 분노한 A씨는 과세관청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즉각 조세심판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A씨는 "세무조사를 받은 뒤 계좌가 B씨 명의로 환원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차명계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보험도 보험사고가 일어나 보험금을 수령했을 때 증여됐다고 보는 것이고,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않거나 해약 또는 만기가 도래하지 않으면 증여가 아니다"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과세관청은 "A씨의 차명계좌에서 보험료가 이체됐으므로 실질적으로 남편 B씨의 차명금융재산에 해당한다"며 "예금 중 일부가 보험료로 사용된 시점에 이미 증여행위가 성립한다"고 반박했습니다. 또한 "보험료의 이체가 증여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행해진 것이라는 특별한 사정에 대한 입증이 없기에 처분은 정당하다"고 못 박았습니다.
□ 심판원 "A씨 저축성 보험, 상증법상 증여" = 사실관계를 살핀 심판원은 과세관청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심판원은 "상증법상 증여는 그 거래의 명칭·형식·목적 등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유·무형의 재산을 타인에게 직·간접적인 방법에 의해 무상으로 이전해 타인의 재산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이기에 A씨의 보험료 납부는 증여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상 증법상증여재산의 취득시기는 '인도한 날 또는 사실상의 사용일'로 규정하고 있어 보험 가입 시점에 이미 증여의사의 합치가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생명보험이나 손해보험은 보험료를 납입하는 사람과 보험금을 수령하는 사람이 다를 경우 보험사고가 발생해 보험금을 받은 때를 증여시점으로 본다. A씨의 보험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 비과세장기저축성예금이기 때문에 납입 시점에 이미 증여가 성립하므로 과세한 처분은 잘못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참고심판례 : 조심2013부4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