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반(反)대기업 정서가 도를 넘었다. 작년 대선을 앞두고 모 국회의원이 경제단체인 전경련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협박성 비난을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남양유업사태를 거치면서 ‘갑’과 ‘을’의 논리로 반대기업 정서가 극에 달한 분위기다. 대기업이 돈을 쌓아 놓고 있는 점이 경제의 큰 걸림돌인양 화두가 되고 있다.
반대기업 정서는 국가의 주요 정책인 조세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칠 태세다.
민주당은 “2012년 전체 법인 46만개의 0.33%에 불과한 1521개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감면규모가 3조5천억원으로 감면총액 6조9천억원의 55.7%에 이른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이 대기업의 배만 불렸다”고 비난했다.
이명박 정부와 대기업을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조세감면은 국가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가 주는 당근이다. 정부는 정책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시책을 적극 장려하고 정책에 순응한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들어 폐수처리시설에 대한 조세감면은 환경보호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기 위한 것이다. 이때 A기업이 폐수처리시설에 1억원을 투자하여 1천만원의 조세감면을 받고, B기업이 폐수처리에 5천만원을 투자하여 6백만원을 감면 받았다면 어느 기업이 국가정책에 더 순응하는 기업인가? A기업이 정부정책에 더 호응하여 조세감면은 더 많이 받았지만 조세감면 혜택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본 기업은 B기업이 아닌가? 여기서 A기업이나 B기업이 조세감면으로 배를 불렸다고 할 수 있는가?
위험감수하고 투자해 일자리 늘린 기업에 '화살'
또 한가지.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는 정치헌금액의 100%를 세액공제 해 주는 정치기부금 조세감면제도나 정당에 주는 국고보조금과는 그 개념이 판이하게 다르다.
대기업 1521개가 전체 법인세감면액의 55.7%인 3조5천억원을 감면받았다함은 이들 기업이 감면액의 10배(임시투자세액공제율 10% 적용)인 35조원 이상의 돈을 사회에 투자하여 국가경제에 기여했음을 뜻한다. 나머지 46만개 기업의 투자액 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는 얘기다.
요즘같은 불경기에 청년실업이 심각한 때는 시설투자를 하고 고용을 늘리는 것이 최상의 애국이다. 그런데 경영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하여 일자리를 늘렸더니 ‘조세감면으로 배를 불렸다’고 비난하면 어불성설, 도대체 어쩌란 얘긴가?
정부여당 역시 조세감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노출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일몰도래’라는 애매한 표현을 쓰면서 마치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는 뉘앙스로 조세감면 축소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경기가 과열되면 정부는 시중 자금을 국고로 끌어들여 시장과열을 진정시키고, 불경기에는 국고를 풀어 민간경제를 지원한다. 이른바 ‘재정의 경기자동조절 기능’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오랫동안 고수해 온 조세정책의 기본뱡향이다.
이러한 조세정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불황이라는 시기에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 증세에 여야가 따로 없어졌다. 조세정책의 산실인 세제실마저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던 조세감면정책을 팽개치고 증세논리에 골몰하고 있다. 세원이 유리지갑처럼 투명하여 탈세여지가 없는 봉급생활자에 대한 증세 카드부터 빼든 세제실이다.
예산권을 가진 권력자는 한 푼이라도 세금을 더 걷으려 하고, 국민들은 한 푼이라도 적게 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 많이 걷겠다는 권력자를 지지하는 대중은 없다.
기업은 불경기로 매출이 줄고 적자가 예상되면 부득이 구조조정을 하여 지출을 줄인다.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헌데 불경기에 제품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은 등을 돌린다.
아르헨티나의 잃어버린 80년 답습하려나
“대기업이 돈을 쌓아 놓고 투자를 안 해서 경제가 안돌아 간다”고 비판하는 것도 큰 문제다.
대기업의 돈은 어디 있는가. 그 많은 돈을 회사금고에 쌓아 놓고 있지는 않을 터. 그렇다면 정부는 금융기관에 예치된 돈을 중소기업에 대출해 경제가 돌아가도록 유도하면 될 일이다.
불경기일수록 조세감면 폭을 더 과감하게 확대하여 투자를 유도하고 사회공헌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늘리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길 아닐까? 정부는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좋은 룰을 만들어야지 기업을 때리면 경제가 악화될 뿐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는 19세기말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아르헨티나 부잣집 가정부로 일하는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동화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세계 6대 부국이었다. 그 아르헨티나가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없는 자에게 나눠주는 페론의 포퓰리즘적 분배정책 때문에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정책에 염증을 느낀 부자들이 부(富)를 해외로 이동시켰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아르헨티나는 1980년 중반 해외로 유출된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면 그 동안 안 낸 세금을 모두 면제해 주겠다는 소위 조세사면(tax amnesty)을 단행했다.
하지만 부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금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부자를 못살게 괴롭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아르헨티나가 싫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광할한 국토와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오늘날 아르헨티나가 ‘축구 잘하는’ 그저 그런 나라로 치부되는 까닭이다.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없는 자에게 나눠주면 일시적 카타르시스는 된다. 이미 19세기말 지하철을 건설했던 소위 잘나갔던 아르헨티나는 한 때의 카타르시스에 빠져 80년을 잃어버렸다.
"절세설계로 조세감면 받는 것은 초애국적 행위"
미국 연방대법원은 절세설계(tax planning)에 대해 Newman vs. Commissioner 판례에서 이렇게 설파하고 있다.
“수차에 걸쳐 법원은 납세자가 세금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거래를 조정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누구도 법률이 정한 것 이상의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납세자들의 그런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있다. 세금은 자선기부금이 아니다. 자선기부금이 아니므로, 도덕의 이름을 빌어 더 많은 세금을 내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선에 불과하다”
미국 대학의 세법교과서에서도 “절세설계하에서 조세감면을 받는 것은 초애국적 행위”라고 묘사하고 있다.
의회와 정부가 세수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조세감면을 결정한 것은 세금을 희생해서라도 얻고자 하는 정책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조세감면을 받은 자는 국가의 정책목적에 순응한 것이다. 권장할 일이지 결코 핍박할 일이 아니다.
세금문제만 생기면 세법대로 했는가를 따지기 전에 '국민정서'부터 들이대는 우리 사정과는 너무 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