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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조세일보 선정 '명품(名品)' 세무사]

"본회 중심 세무사회 바뀌어야"…중부회장 도전, 정범식 세무사

  • 보도 : 2013.04.26 09:54
  • 수정 : 2013.04.26 12:59
21세기 트렌드는 '명품(名品)'이 좌우하고 있습니다. 명품은 다른 상품들과는 차원이 다른 품격(品格)과 가치(價値)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 직업의 스페셜리스트에게 명품 직업인이라는 최고의 칭송을 붙이는 것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세무사,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에 매진하며 자신의 숨겨진 가치를 분출해 내는 세무사, 확실한 실력과 서비스로 고객에게 더 다가서는 세무사, 조세일보(www.joseilbo.com)가 발굴할 명품세무사들입니다.
 
조세일보가 이번에 발굴한 명품세무사는 정범식 세무사입니다. [편집자 주]

정범식 세무사

 

"수원세무사회 궤도에…이젠 중부세무사회를 위해 본격적인 봉사"

"지방세무사회의 특성을 고려해서 자율성을 존중하는 운영이 필요합니다."

본회 중심의 세무사회 운영에 쓴소리를 마다않는 지방세무사회 임원이 있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따뜻한 인상이지만 날카로운 통찰력과 열정만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세무공무원 시절, 2년 만에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것도 그렇지만 IMF 한가운데에서 세무사사무소를 개업해 지금까지 마음먹은 일은 모두 이뤄온 더편한세무법인 정범식 대표세무사가 그 주인공.  

이런 그의 열정은 주변에서 먼저 알아봤다. 경기도 고문세무사도, 대학 강의도, 중부지방세무사회 회직도 주변의 추천으로 맡게 됐다.

주어진 일을 마다않고 성실하게 임해온 결과 그에게는 더 큰 책임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취재차 방문한 기자들에게 손수 커피를 타서 갖다줄만큼 소탈하다. 

두 딸과 두 아들에겐 "공부는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 하라"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줄만큼 자율성을 존중하는 아버지, 직원들에게는 15년 넘게 따르고 싶을만큼 믿음직한 대표님.

중부지방세무사회에서는 수원권역 세무사와 공인회계사를 하나로 엮어내 각종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도우미'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매김한 정범식 세무사를 만나 그의 삶의 궤적과 업적,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교사 대신 선택한 세무대학…'제2의 고향'이 된 수원

정범식 세무사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정 세무사의 어릴 적 꿈은 교사였다. 대구고를 졸업한 뒤 사범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9남매 중 8째, 아들로는 막내인 그는 환갑이 넘으신 아버님과 형님들께 대학 학비까지 손 벌릴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수원에서 군 생활을 한 셋째 형님의 추천으로 학비 부담이 없는 세무대학에 지원했다. 당시 갓 신설된 세무대학은 아직 기숙사도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2기 신입생을 받은 상태. 세무 분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이 입학한 정 세무사는 신입생 시절 방황도 많이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민방위 훈련복과 비슷한 교복을 입고 막걸리 마시러 다닌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곧 세무 분야의 매력을 느끼고 학업에 정진, 84년 졸업 후 북인천세무서로 발령을 받았다.

두 달 후 군에 입대, 제대 후 본격적인 첫 발령지인 수원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터를 잡고 살게 됐다. 우연히 세무대학에 진학하면서 연을 맺게된 수원이 정 세무사에게는 세무공무원과 세무사사라는 길을 터주었을 뿐 아니라 제2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
 
◆조사국·법인세과에서만 10년…잔뼈 굵은 ‘법인세通’

제대 후 본격적으로 국세공무원으로 일하게 된 곳은 수원세무서 총무과. 이후로는 성남, 중부청, 경인청, 안양, 동안양세무서 등에서 주로 조사국과 법인세과 업무를 담당했다.

공무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중부청 조사국으로 발령받은 당일에 있었던 일. 발령 첫날 새벽 3시까지 일한 뒤 눈도 못 붙인 채 새벽 6시에 집결해 한강유람선을 운영하는 기업에 영치(예치)를 하러 갔다. 그만큼 빽빽한 일정이 조사국의 일상이었다.

다른 에피소드는 80년대 폐쇄적이었던 민원실 구조에 대대적 개편 지시가 내려졌던 일. 당시 민원실은 철저히 공무원 입장에서 만들어져 민원인이 방문하면 담당 공무원의 얼굴조차 보기 어려운 조그만 창구를 통해 업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새로 부임한 국세청장이 이를 보고 "당장 바꾸라"고 지시하자 전국의 세무서가 일제히 모범사례로 꼽힌 세무서를 모델로 삼아 개방형 민원실을 만들기 위해 일대 소동이 벌어진 것. 당시 말단 공무원이었던 정 세무사는 민원실을 꾸밀 천을 구하러 전국을 뒤진 끝에 대전 시장까지 기차를 타고 천을 사러 갔던 일을 잊지 못한다.

그 일을 계기로 권위적인 민원실 구조를 납세자 중심으로 개편하게 됐지만, 말단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애환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서른 여섯, 다소 이른 개업에 '도전'…"IMF의 위기를 기회로"

정

정 세무사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30대 중반에 세무사 시험에 도전, 2년 만에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당시 연간 300여명에 불과했던 합격자 수와 현직 근무 중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빨리 합격한 셈.

동기 중에서도 합격이 가장 빠른 편에 속했던 그는 1998년 비교적 이른 나이인 36살에 개업을 하게 된다.

공직을 그만둘 당시에는 열심히 일했던 만큼 자신감이 있었지만 막상 IMF 구제금융의 한가운데에서 개업을 앞두고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퇴직자들의 자영업 개업이 봇물이 이루면서 오히려 IMF의 도움을 받은 셈이 됐다.

한번 인연을 맺은 고객과는 신뢰를 생명처럼 여기고, 직원들과도 가족처럼 지내면서 큰 어려움 없이 지역에서 이름난 세무사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1998년 개업 당시 같이 일을 시작했던 직원 2명은 아직도 정 세무사와 함께 일하고 있다.

사무실이 성장하면서 자신감도 붙었다. 공부와 연구에 대한 욕심에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대학 강단에도 섰다. 세무사회와 재정정책학회 등 여러 단체에서 회직과 임원을 맡아 활동했다. 법인화에도 도전해 현재는 수원세무서 바로 뒷편에 위치한 더편한 세무법인의 대표 세무사를 맡고 있다.

또 주변의 추천으로 경기도 지방세심의위원회 위원, 경기도 고문세무사 등으로 일하며 경기도 공무원들의 세무 업무 과정의 문의 사항을 해결해 주고, 산하기관의 회계처리도 상담해주고 있다. 고문세무사의 경우 봉사의 성격이 강하지만 보람도 느끼고, 도청 공무원들과 지속적인 신뢰관계를 이어갈 수 있어 성의껏 상담에 응하고 있다.

지방세심의위원은 연구와 봉사를 동시에 할 수 있어서 시작했다. 국세와 지방세의 과세 체계가 다른 점을 감안, 지방세 공무원들이 과세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처리할 때는 지나친 국고주의를 견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납세자 입장에서 '논리 개발' 주력…교수로 강단에 서며 교사의 꿈 이뤄 

개업을 한 뒤에는 조사국과 법인세과에서 10년 이상 근무해온 실력을 십분 발휘, 고객의 입장에서 합당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상담과 세무대리 업무에 임해왔다. 기억에 남는 사건은 잔금을 못받은 상태의 분양권 매각에 대해 미등기 전매로 보아 양도세를 부과한 사건의 처리.
 
잔금을 치르지 않았는데도 미등기 전매로 과세한다는 것이 비상식적인 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납세자보호담당관이나 서장도 인정했지만, 국세청 예규나 판례는 정반대의 입장이었던 것. 정 세무사는 관련 판례를 뒤진 끝에 소송 판례를 찾아내 상식과 논리에 호소함으로써 해당 과세 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납세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논리 개발의 노력은 정 세무사를 학업에의 길로 이끌었다. 2000년 고려대 정책대학원 세정학과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고 나자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못이룬 교사의 꿈을 이뤄보자고 나선 것이 용인송담대, KDI국제정책대학원, 아주대평생교육원, 협성대, 수원여대 등의 강의로 이어졌다.

매년 바뀌는 세법 분야의 특성상 3시간 강의를 위해 6시간을 준비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은 있었으나, 강단에서 젊은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4남매를 키우고 있는 그는 젊은 학생들에게 아버지같은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학생들이 너무 취업에만 매달리고 있어요. 창업이나 취업이나 고생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은 같지만 무엇을 목표로 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젊은이들이 좀 더 진취적인 태도로 도전해야 남들과 다른 것을 얻을 수 있고, 우리 경제에도 활력이 생긴다고 봅니다."

◆중부세무사회의 '터줏대감'…세무대리인연합회의 '성공'

정범식 세무사

수원지역세무사회의 간사로 시작해 중부지방세무사회에서 봉사하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햇수로 10년차에 접어들었다. 정 세무사는 2003년부터 2년간 중부지방세무사회 연구이사를, 4년간 총무이사를 맡았으며 2009년부터는 수원지역세무사회 회장으로 4년째 지역세무사회를 이끌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수원, 동수원, 용인, 화성 세무서 관할 지역의 세무사와 공인회계사들의 연합 모임인 수원권역세무대리인연합회 발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지역이 예전의 수원세무서에서 분서된 하나의 생활권입니다. 그러다보니 지역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죠."

실제 연합회에서는 세무사회에서 명의대여로 적발된 사무장이 회계사 사무소에서 영업을 하거나, 고의적으로 고객을 빼가는 직원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공동 대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세무·회계 사무소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에 자정노력을 기울였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연합회를 통해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면서 윈-윈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 회원들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회비 납부 비율도 60%에서 90%까지 상승했다.

◆"세무사회, 본회만 중요한 건 아니죠…지방회 지원 강화해야"

"한국세무사회에서는 본회를 중심으로 회를 운영하면서 지방회 사무국 직원의 인사권까지 가져갔지만, 지방회는 지방별로 나름의 특성이 있다는 점을 존중해야 합니다."

정 세무사는 본회 중심의 회 운영과 예산 배분 문제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교육프로그램도 교통이 편리한 서울은 한 군데에서 진행해도 괜찮지만 중부는 면적이 제일 넓어 한 곳에서 진행하기 어렵다. 경기도도 수원, 성남, 고양, 안양 등 대도시와 소도시, 농촌 지역의 특성이 제각기 달라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또 현재 본회에 내는 회비의 25% 정도만이 중부지방회에 돌아오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35% 정도는 중부지방회에서 중부지방회의 특성에 맞게 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기세를 몰아 중부지방세무사회 회장에 출마할 계획이다. 10년째 주요 회직을 맡아오면서 그동안 쌓은 노하우와 소신을 통해 중부지방회도 회의 위상에 맞게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10년째 회직을 맡다보니 회는 이렇게 운영해야 하는구나 하는 감이 생기고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했어요. 이제 회직을 통해 대접받으려는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동안의 노하우를 접목시키면 중부세무사회 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원지역세무사회를 궤도에 올려 놓은 뒤 중부지방을 위해 다시 봉사에 나서겠다는 그. 차분하지만 조용한 열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에 도전해 성공을 일궈온 정범식 세무사의 다음 도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Inside Interview-사람의 '香']

정범식 세무사

"매일 운동으로 체력관리…취미는 ‘클래식 음악’
아이들에겐 ‘방목형’ 아버지…세무사 시험 준비하는 두 딸
경상도 남자 곁 지켜준 아내에 "사랑합니다"

딸 둘 아들 둘. 네 남매의 아버지인 정범식 세무사는 자녀들을 ‘방목형’으로 길렀다. 아이들이 내일 수능 시험이어도 함께 TV를 보았고, 뭐든지 알아서 하도록 했다. 수도권 4년제 대학에 입학하면 등록금을 지원해주고 이외는 본인이 벌어서 가도록 했더니 다들 알아서 공부를 해준 편이다.

두 딸은 아버지가 걷는 길이 좋아보였는지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아들은 운동을 좋아해 누나들만큼은 집중하지 못했지만 특별히 걱정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본인이 원해서 할 때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

정 세무사의 취미는 음악과 운동.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즐겨 듣는다. 세무대학 시절에는 매달 <월간 팝송>에 실리는 아티스트 소개를 외울 정도로 팝송에 빠지기도 했다.

군대 암호병 시절 라디오를 들으면서 클래식의 매력을 접하고 이제는 작업하면서도 KBS 1FM을 듣는다. KBS홀과 예술의 전당, 경기도 문화의 전당에서 열리는 라이브 공연도 자주 찾는다.

1995년부터 시작한 테니스도 벌써 20년이 되간다. 일주일에 5일은 운동을 통해 체력을 기른다. 월‧수‧금은 테니스, 화‧목‧토는 근력운동을 꾸준히 해 온 것이 건강관리에 도움이 됐다.

네 아이를 키우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한 아내에게는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경상도 남자라 표현은 많이 못했지만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다소 쑥쓰러운 듯 전하는 그에게서 가족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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