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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조세일보 선정 '명품(名品)' 세무사]

한결같이 지켜온 '뜨거운 진심(眞心)'…정영래 세무사

  • 보도 : 2011.07.20 17:02
  • 수정 : 2011.07.22 16:55



경기도 성남시 분당 미금역, 아파트 단지가 가득한 '베드 타운' 한 가운데 아늑하게 자리잡은 '프라임 세무법인'.

10년 전 '세무사 정영래 사무소'로 출발하여 지금은 장명호 세무사 등 4명과 함께 세무법인으로 전환, 세무법인의 이름으로 납세자들의 어려운 세금 업무의 도우미를 자처하고 있다.  

정 세무사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방황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공무원의 길로 들어서 세무사가 됐고, 이제는 교수로서 대학 강단에까지 서게된 입지전적(立志傳的) 인물. 세금에 대한 뚜렷한 소신과 고객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분당 지역의 세무명가(名家)인 '세무법인 프라임'을 이끌고 있다.

"세무사회에서도 전산상임이사로 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고, 다양한 봉사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진정한 '명품(名品)'세무사"라는 많은 분들의 추천으로 정영래 세무사를 만났다.

정영래 세무사의 세무사로서의 삶과 열정 그리고 인생스토리를 들어 봤다. 

◇ 가난이 서러웠던 어린 시절…종교의 힘으로 자신감 얻어 

1952년생인 정 세무사는 7남매 중에 다섯 째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고향에서 학교를 다닌 정 세무사는 공부를 참 잘했다. 초등학교를 전교 3등으로 졸업하면서 학교장상을 받았고, 중학교도 역시 학교장상을 받으며 졸업했다.

전과목을 두루 좋아하고 잘 해서 교실 뒷벽에는 정영래 학생의 그림, 글씨가 붙어있지 않은 날이 없었고 우등상, 개근상을 받지 않은 해가 없었다.

그러나 빠듯한 집안 살림은 서울로 유학간 형님 뒷바라지에 집중하기도 버거웠던 탓에 결국 정영래 소년은 학업을 접고 생계 전선에 나서게 된다.

"처음엔 큰 형님의 소개로 금은방에 들어가서 세공 일을 배웠는데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속상했습니다.  또 적극적으로 제 의사를 어른들께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정 세무사는 당시 신앙이 돈독하신 외삼촌의 권유로 차츰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집에서 먼 길이었지만 예배당을 다니게 되고 부흥회를 경험하면서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성격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세공일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게 됐습니다. 그렇게 세공소를 나와서 서울로 시집간 누나 집에 무작정 찾아가게 됐습니다."

서울에서 누나에게 의지해 공부를 해보려던 꿈도 잠깐, 매형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정 세무사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등 생계를 꾸리다 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군에서도 군종사병을 하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이 때 가슴에 품은 종교는 지금까지 이어져 각종 봉사활동에 앞장서는 '아름다운 기록'으로 쌓여가고 있다. 

◇ 방황 끝내고 '국세공무원'의 길…"납세자 입장 더 생각했더라면"

1976년 말, 3년여의 군생활을 마친 정 세무사는 '집에서 다시 농사나 짓게 할 수 없다'며 학원비를 마련해 주신 아버지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광주에 계신 형님 댁에서 밤을 지새우며 죽을 각오로 매진, 두 달 만에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광주에서 시험을 봤는데 발령이 서울로 났습니다. 첫 부임지는 한강세무서 총무과였고, 그 후에 서울지방국세청 총무과로 옮겨 2년을 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총무과에서만 4년 일한 것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정 세무사가 국세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1977년도는 마침 국내에서 처음 부가가치세 제도가 시행됐던 해. 시행착오가 많았던 제도 시행 초기에 납세자와 직접 접촉이 없는 총무과에서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차라리 행운이었다고 정 세무사는 회고한다.

"그 후로 소득세과와 재산세과에서 10년씩 20년을 일했습니다. 항상 납세자 입장에서 일을 처리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세무사가 되어 돌이켜 보면 그 때 더 납세자의 입장을 헤아려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 밀레니엄 맞아 '납세도우미'로 변신…고객의 세금생각 바꿔놓다

정 세무사는 좀 더 납세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1999년에 세무사 시험에 합격했고, 밀레니엄을 맞아 마지막 근무지였던 성남세무서 관할 미금역 근처에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2003년부터 세무사회 공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당시에 회의 공제기금 운영방안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연금전문가에게 의뢰해서 보고서를 냈어요. 세무사회 공제회비는 매년 30만원씩을 내고 퇴직 후에 연금처럼 돌려 받고 있는데 내는 돈에 비해 많이 받고 있어서 부실화될 우려가 높았습니다. 기금 운영이 고갈되기 전에 적절하게 운영하자는 취지로 개선안을 낸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의 활동을 인상깊게 본 회원들의 추천으로 2007년부터는 세무사회 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부회장이었던 황정대 세무사가 국세공무원 시절 관악세무서에서부터 함께 한 20년 지기라는 점에서 회무에서도 손 발이 잘 맞았다.

회원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때 경험한 '회무봉사의 길'은 두고 두고 큰 자산으로 남아있다.

"사람을 만나면 늘 한결같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한번 마음을 터놓으면 의리를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주변에서도 많이 믿고 신뢰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한결같음'은 정영래 세무사의 트레이드 마크다. 고객들과도 처음 개업할 때 맺었던 인연의 끈은 거의 놓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세무사님은 세금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낼 세금은 내고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확실하게 절세 방법을 알려 주시니까 세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됐죠. 저도 세금 많이 내서 모범 납세자상도 받았습니다."

10년째 정 세무사와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 한 사업가 고객의 말이다.

정 세무사는 직원들에게는 어떤 대표일까.

프라임 세무법인의 직원들은 올해 법인세 신고를 마치고 전 직원이 '이은결의 매직쇼'를 관람했다. 종합소득세 신고업무를 마친 6월에는 홍콩과 마카오에 4박 5일 여행을 다녀왔다.

직원들은 "세무사님이 휴가만 준 것이 아니라 경비까지 다 부담해 주셔서 너무나 편안하고 즐겁게 쉴 수 있었다"면서 "여러 사무실에 다녀봤지만 정 세무사님 만큼 직원을 챙겨 주시고, 전적으로 믿어 주시는 분은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집에서는 95세 노모를 모시는 효자이자 자상한 남편, 두 딸의 아버지다. 둘째 딸은 정 세무사가 세무사 시험을 권유한지 1년 4개월만에 동차로 합격하고 지금은 국내 최대 항공사의 재무회계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런 다복한 가정의 힘은 정 세무사가 다양한 사회활동과 봉사에 나설 수 있는 바탕이 되고있다.

◇ 중졸 소년 '대학교수'가 되다…장학금 후원자로

너무나 공부하고 싶었지만 가난 때문에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소년은 자라서 대학 교수가 됐다. 그리고 학비가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까지 지급하고 있다.

"고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를 봤고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당시 방통대 수업을 서울대에서 했는데 관악캠퍼스에서 공부하면서 그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공부에 대한 열정이 다시 샘솟는 것을 느꼈지요."

"개업 이후에 건국대 세무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국세청 재직 시절부터 알아온 교수님의 추천으로 남서울대학에서 세법을 비롯한 여러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두고 고민을 하다 포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후회가 남네요. 배움에는 나이도 없고 끝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를 이어가다 보니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정 세무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위해 딸들이 다녔던 대학교와 남서울대학교에, 또 고향의 후배들을 위해 전남인재재단에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또한 2년 전부터는 '로시콤(lawseecom)'이라는 인터넷 법률센터에서 세무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간단해 보여도 직접 하는 사람은 여러 자료를 참조하며 상당한 노고를 쏟아야 하는 일이 인터넷 세무상담이다.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큰 기쁨이다. '세무사님! 친절하고 빠른 상담 감사드립니다'라는 문자나 댓글에도 작은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정 세무사는 컴패션, 한국사회복지회, 다일공동체 등 여러 단체를 통해 저개발국가 아동들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후원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교회에서는 장로로 봉사하는 것은 물론, 국내외 여러 선교회에 참여하여 선교비를 후원하고 있고, 올 4월에는 세무사기독선교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어 봉사하고 있다. 

정 세무사가 서기를 맡고 있는 '솔리데오 장로 합창단'은 매주 연습을 통해 정기적으로 교회나 군부대에 위문공연을 하고, 매년 정기연주회와 해외선교연주를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실력있는 세무사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세금을 안 내는 것이 상책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세금을 잘 내면서 사업도 잘 할 수 있을까를 고객과 함께 고민합니다. 항상 납세자의 입장에서 편안하게 고충을 들어드리려고 하니 신뢰가 쌓여 지금에 이른 것 같습니다."

또 정 세무사는 고객의 납세에 관한 문제의 소지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항상 새로나온 법률, 판례와 예규 등을 연구, 적용하고 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일은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늘 열린 가치관과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만 세무 업무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일과도 긴밀히 연결돼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프라임 세무법인의 사훈이 '정직, 성실, 친절, 봉사'입니다. 정당하게 번만큼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쓰고 남은 것은 사회에 돌려주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는데 프라임 세무법인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음을 항상 감사하며 고객에 대한 친절과 봉사에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는 정영래 세무사에게서 고객과 마음을 함께 하는 진심과 학문적 탐구와 연구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야말로 오늘의 그를 있게한 원천임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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