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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조세일보 선정 '명품(名品)' 세무사]

세금 통해 '국민 화합(民和)' 꿈꾸는…'임채룡 세무사'

  • 보도 : 2011.06.16 09:18
  • 수정 : 2011.06.21 11:44


"조세 '유토피아'의 꿈 세무법인 민화(民和)가 초석될 것"
"세금 많이 내는 사람이 존경 받는 사회되어야 '선진세정'"


◆ "세금과 세무사"를 말하는 세무사 '임채룡'

세무사는 때로는 납세자의 입장에서 때로는 과세관청의 입장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국가세정을 돕는 도우미 역할을 해야 한다.

임채룡 세무사는 이런 다양한 시각과 공정한 입장에서의 판단을 우선시 하는 세무사의 표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임 세무사의 조세에 대한 철학은 명쾌하다.

"조세는 국가 재정을 위해 강제적으로 징수하는 것이지만, 현대의 조세는 강제의 개념보다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의 운영 경비를 부담한다는 개념이 강하다"고 정의했다. 따라서 "당연히 공동체 경비를 많이 부담하는 사람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생각의 소유자인 임 세무사는 세무사의 역할과 관련해서도 강하면서도 '통큰' 지론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원치 않지만 공동체의 경비 부담이라는 차원에서 세금을 이해한다면 성실신고와 공평과세는 당연한 귀결이 된다"며 "우리 세무사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파한다.

"성실한 세무신고가 될 수 있도록 조력함으로써 부자가 더 많은 공동경비를 부담하게 될 것이며, 결국 동반자적으로 사회적인 신뢰가 쌓이게 되어 우리 세무사의 위상도 제고될 것"이라는 것. 즉 "성실신고와 납세자에 대한 존중이 선진세정"이라는 것. 이것이 임 세무사의 '세금과 세무사'에 대한 작은 철학이다.

임 세무사는 "간혹 세금을 경시하는 납세자를 발견하면 세금은 국민의 존재의무라는 점을 거래처가 떨어져 나갈 것을 각오하면서 철저히 인식시켜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납세자의 권익과 절세(節稅)를 위하여 밤을 새우는 열정으로 인해 거래처로부터의 신뢰는 여느 회원들보다 끈끈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한 그는 "과세관청이 납세자를 우대하는 정책은 납세자가 납세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 만큼 중요하다"며 "우수한 조세제도와 우수한 납세자의 의식이 병행된다면 그야말로 '유토피아'"라고 강조했다.

◆ 산골짜기 골목대장, '세금(稅金)'을 만나다

1951년 전남 여수 덕양의 산골짜기 마을에서 태어난 임 세무사는 '골목대장'으로 불릴 정도로 개구쟁이였다.

무척이나 가난했던 그는 5살이 되어서야 6·25때 징용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를 조우하게 된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무척 좋아했던 탓에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학급에서 하위그룹에 맴도는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던' 자유분방한 청소년이었다.

그러던 그가 고생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당시 처음 손에 든 수학 책 한 권이 그의 인생에 있어 변화의 시작이었다.

임 세무사는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수학 책 내용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더라"라고 어린시절을 회상했다.

이후 공부에 재미를 느낀 그는 재수 끝에 전남대 의대에 당당히 응시해 합격통지까지 받게 됐다.

하지만 대학등록금 마련에 역부족이었던 가정형편은 그의 의대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등록금을 마련해 대학을 찾아갔지만 하루가 늦어 합격의 영광을 후순위 합격자에게 내준 뒤였다. 임 세무사는 "하늘이 노래지고 땅이 흔들려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형편에 가만히 넋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한 그는 1972년 행정직 공무원시험에 합격, 당시 인천세무서 징세계를 시작으로 국세공무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한 세무서당 한 두명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어려웠던 부기2급 시험도 '뚝딱' 합격한 그는 79년 7급으로 초고속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80년대 초 지금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전신인 특별조사반이 창설될 때 전국에서 차출된 35명의 우수인재들의 명단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 그였다. 그 특조반에서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아 그 사건' 하고 금방 떠오를 정도의 굵직굵직한 대형 세무조사와 금융조사분야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 세금을 통해 '국민과 화합(民和)' 꿈꾸다

1972년 9급 국세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시작된 임채룡 세무사와 납세자와의 인연은 어느덧 40년을 바라본다.

1993년에는 납세자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세무사로 개업했고, 이후 납세자에게는 성실납세를, 과세관청에는 납세자에 대한 존중을 강조해 왔다.

그가 주변 지인들과 2009년 출범시킨 세무법인 '민화'(民和)는 세금을 통해 국민(民)과 화합(和)한다는 큰 뜻을 품고 있는 이름이다. 정직한 사회, 화합하는 사회, 즉 조세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그의 생각을 또렷이 품고 있는 것이다.

◆ 낮은 자세, 발로 뛰는 '세무사회 임원'이 되고 싶었다

임 세무사는 세무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세무사 회원들을 위해 '밑에서부터의 봉사'를 자청한 사람으로 불린다. 송파세무사회 총무, 송파세무사회 회장, 서울지방세무사회 홍보이사, 한국세무사회 총무이사와 대외전략위원장, 부회장 등 결코 쉽지 않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지역 세무사회 회원들의 애환을 챙기는 지역협회 총무를 시작으로 전국 조직인 세무사회 선출직 부회장까지의 회무 봉사를 하면서 회원들의 아픈 구석구석을 누구보다 많이 체득하고 또한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는 게 지인들의 평가다.

임 세무사가 세무사회 총무이사로 재직할 때는 예산절감 문제는 물론이고 세무사 업계가 화합을 필요로 하는 상당히 어려운 시기였다. 함께 대화하고 타협하고 화합을 일구어 내면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업무를 부드럽게 무리없이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부회장과 대외전략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국회로, 관계부처로 발로 뛰면서 적극적으로 회무에 임해 징계권의 완화문제, 전자세금계산서 시행시기 1년 연장, 지방세법의 납세관리인제도 수정, 그리고 세무사 등록업무의 세무사회로의 이관 등 많은 업무에 관여해 세무사회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를 했다.

임 세무사는 아마도 '긍정의 힘'에 바탕을 둔 '미소와 열정'이 상대방에게 신뢰를 심어주었고 이런 신뢰가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했고, 회무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믿고있다.
 
또한 그는 회직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고 술회한다. 우선 지식과 열정을 갖춘 많은 젊은 세무사들을 만났으며, 또한 많은 세무사들이 드러내지는 않지만 세무사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또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고 한다. 특히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세상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귀한 시간이었다는 것.

이런 소중한 경험으로 임 세무사는 "만약 다시 회직을 맡는다면 회원들의 자부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한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 어릴적 꿈 '만학(晩學)'으로 성취…40대에 '대학'…50대에 '박사'

임 세무사는 열정으로 똘똘뭉친 사람이다. 그는 못 다한 공부를 위해 40대 후반에 전문대를 졸업하고 대학에 편입하여 50대 후반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런 열정으로 그가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갈 때 동료의 등록금을 대신 납부해 동료도 같이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한 에피소드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늦깎이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할 것인지 고민을 하던 임 세무사는 박사 선배 세무사로부터 "기왕에 시작한 것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좋다"는 격려를 받고 등록금을 내기 위해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함께 박사과정을 등록하기로 한 다른 동료 세무사가 "나이 들어서 더 공부해서 무엇하느냐"며 등록을 포기한 것이었다.

당시 임 세무사는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동료 세무사의 의사도 묻지도 않고 두 사람 분의 등록금을 무조건 납부해 버렸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한 '형제의 애(愛)'를 쌓아가고 있다고 한다.
 
◆ 화합을 꿈꾸는 세무사…세금 외적인 일에도 '종횡무진'

민화(民和)를 꿈꾸는 임채룡 세무사는 최근에는 새터민(북한이탈민)을 돕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새터민 자녀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은 물론, 새터민 신혼부부들에게 혼수용품도 기증하고 있으며, 새터민들이 사업을 시작하면 사업자등록 지원 등 세무사로서 할 수 있는 재능을 기부하는 일에도 발벗고 나서고 있는 것.

지난해 11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송파구협의회 주관으로 치러진 새터민 합동결혼식에서 신혼부부 10쌍에게 혼수품인 '사랑의 밥솥'을 전달,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또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기원했다. 이어 금년 3월에는 새터민 자녀 10명에게 장학금 전달식을 갖고 지속적인 후원까지 약속하며, 감동을 선사했다.

임 세무사의 새터민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월세를 내며 식당을 운영하는 새터민이 법인전환을 위해 건물주에게 임대차 계약상 법인전환 동의를 구했으나 건물주는 법인으로 전환되면 건물에 근저당이 설정될 수 있다는 이유로 새터민의 요청을 거부한 것. 임 세무사는 "건물주로서 당연한 의무를 저버리고 새터민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를 한 것"이라며, 본인이 직접 건물주를 만나 설득해 새터민의 사업자등록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임 세무사는 "새터민을 바라보는 사회인식이 아직 우리의 참다운 이웃으로 보는 것 같지 않다. 점차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시점에서 좀 더 따뜻한 민족애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며 "경제적 자립은 물론 정신적 자립이 가능하도록 대한민국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남다른 '애국·애향심'…세무사 위해 '더 큰 봉사(奉仕)'하고 싶다

새터민을 위한 봉사활동 외에도 임채룡 세무사에게는 독특한 이력이 많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감사, 자유대한 지키기 국민운동본부 감사,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하는 등 유독 애국을 표방하는 단체와 인연이 많은 것. 그는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 청와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을 때 "전쟁 나면 나도 군대 다시 가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애국심은 물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도 누구 못지 않은 임 세무사는 재경순천중고교 동창회장도 지냈다.

누구보다 열심히 봉사했다고 자부하는 한국세무사회 부회장, 한국세무사회 대외전략위원장 외에 세무사자격심의위원을 역임한 것도 임 세무사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되고 있다. 지금은 송파세무사 납세자보호위원장을 맡아 납세자들의 어려움을 앞장서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임 세무사는 일주일에 두 번씩 서경대학교 회계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면서 쑥쑥 크는 제자들의 모습에 새로운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임 세무사는 더 큰 꿈을 가지고 있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세무사회원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해 온 만큼 소중하고 큰 자산(경험)이 되었다"면서 "더 큰 봉사를 할 준비가 돼 있고, 또 그것을 위해 달려갈 것"이라고 했다.

이런 임 세무사에 대한 지인들의 평가는 또렷하다. "임 세무사는 의외로 많은 세무사들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면서 "그래서 누구나 좋아하고, 갖고 싶은 '보석' 같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임 세무사는 "상대방이 기분이 좋아야 내가 기분이 좋다"며 "모임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상대를 이기고 경쟁하는 것은 순간이지만 상대에게 좌절을 안겨주는 시간은 길다"는 그는 "서로 윈-윈(win-win)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고 타인과 공존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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