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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조세일보 선정 '명품(名品)'세무사]

"여주(驪州)의 새 역사 쓰는 것이 꿈"…원경희 세무사

  • 보도 : 2011.05.19 13:30
  • 수정 : 2011.05.19 13:30


본능적 리더십…어려운 고향민에 전문 세법지식 기꺼이 환원

"세무사, 시험만 합격해도 사회특혜 받은 것…봉사․환원해야"
 
프로페셔널한 세무 서비스 뿐 아니라 누구보다 적극적인 사회 봉사로 '명품 세무사 집안'이라는 명성을 쌓고 있는 부녀 세무사가 있어 화제다. 바로 전국 6개 지점을 둔 '조은 세무법인'을 이끌고 있는 원경희 세무사와 역삼 본점에 근무하는 딸 원혜진 세무사.

원경희 세무사는 20년간 국세청에 몸 담았던 국세공무원 출신이다. 지난 1996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원경희 세무사사무실’을 개업한 후 2002년에 '조은세무법인'을 설립했고, 이제는 전국에 6곳의 지점을 둔 대형세무법인의 대표를 맡고 있다. 

2003년 4월부터 2005년 4월까지는 한국세무사회 선출직 부회장직을 지내기도 했다. 
 
이런 아버지의 일에 대한 열정과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지켜봐온 딸 또한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멘토로 삼아 가업을 잇게 됐다. 원혜진 세무사는 경원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2007년 제44회 세무사시험에 합격했다.
 
"인간적으로 부드럽지만 일에 있어서는 엄격한 아버지에게 배우면서 빠르게 전문성을 키울 수 있었다"는 딸의 노력과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낚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리더십은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며 정말 '좋은' 세무 서비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세무 지식과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던 고향 여주에 사무실을 내고 지역의 세무 도우미를 자처, 명실상부한 '여주의 보물 세무사'가 된 원경희 세무사 부녀에게 열정과 성공의 비결과 그동안 가꿔온 꿈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 반장을 놓쳐본 적 없는 소년…어디서나 그 자리의 주인
 
원경희 세무사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창시절 내내 반장을 도맡아 했다. 심지어 대학교와 대학원에서는 동문회장을 지낼 정도로 어디서나 리더의 자리를 지켰고 봉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중·고·대학에 입학하면 처음에는 원경희라는 친구를 잘 모르던 급우들도 금방 그 따뜻한 성품과 마음 씀씀이를 인정해 어김없이 다음 해에는 반장, 회장으로 추천하곤 했다.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외로워하던 막내 아들이 혹여 비뚤어질까 항상 '겸손'을 강조하시던 어머니의 가르침 덕택이었다.
 
"저희 형편도 좋지는 않았지만 항상 더 어려운 친구에게 차비를 빌려주고 도시락을 나눠먹곤 했습니다.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배려가 많은 편입니다. 이런 제 성격에 영향을 끼친 분이 바로 사랑하는 어머님과 존경하는 초등학교 때의 담임 선생님입니다. 항상 겸손할 것, 어디서나 남을 먼저 배려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 성실과 신뢰로 국민에게 봉사한 '국세공무원 시절'
 
"인하대학교 공과대학에 합격해 놓고도 입학금이 없어 등록을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국가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는데 국세청으로 발령이 났고, 그 후로 20년을 국세공무원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우연히 세금 분야에서 일하게 된 것이 적성에 더 맞았고 인생의 길이 됐으니 결론적으로는 공대(工大)에 못 간 것이야 말로 최고의 행운이었던 셈이죠."
 
이렇듯 항상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 세무도우미인 원 세무사에게 고객들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을까.
 
국세청에서는 세무조사, 법인세, 소송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일단 새로운 부서에 배치되면 6개월 안에 모든 업무를 마스터하기 위해 밤잠을 아껴가며 매달렸다고 한다. 이렇게 공부하고 노력한 경험이 세무사 개업 후에 고스란히 힘을 발휘했다.
 
"억울하게 세금을 부과받았지만 변호사에게 대리를 맡길 수 없는 어려운 분들의 딱한 사정을 알고 소송 업무를 대신 처리해 드린 적도 있습니다. 이때 만난 분들이 저에게 신뢰를 주셨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국세청 송무과 시절의 일화를 소개하는 원 세무사에게서 느껴지는 열정과 진심이 그의 가장 큰 자산임을 알 수 있었다.
 
□ 고향 여주의 '세금도우미'로 새 출발
 
원 세무사는 96년 공무원 근무 20년을 맞아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다. 징세자의 입장이 아닌 납세자의 입장에서 세무도우미로 봉사할 결심을 하게 된 것.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삼성세무서 근처에 첫 터전을 잡았지만 6년 만에 세무법인을 설립하면서는 고향인 여주 행을 결심하게 된다. 

그동안 항상 마음 속에 간직했던 "전문가로서의 지식과 지혜를 어려운 납세자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소신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당시 여주 지역에 세무사 사무실이 딱 1 곳 있었습니다. 고향의 선후배들을 만나면 세법을 몰라서 엉뚱한 세금을 내면서도 대처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습니다." 
 
"여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上京)해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상황이다보니, 언젠가는 부모님과 형님, 누나가 계신 고향에 내려가서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무실을 오픈하고 나자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당시 지역민들은 세무 마인드가 약해 기본적인 증빙자료 조차 챙겨두지 못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세무사의 도움을 받고 수임료를 내는 것에 익숙치 않은 영세자영업자들이 많았던 것. 당연히 무료로 상담을 해주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형편이 어려운 영세자영업자의 세금 문제는 모두 무료로 처리해 드렸습니다. 아예 수임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어려운 고향분들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상담을 해드리니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하지만 옛 말 틀린 것 없다는 것을 금새 깨달았습니다. 가는 정이 있으니 오는 정이 있다고 할까요. 기장을 맡기겠다는 사업자들이 소개에 소개로 이어졌습니다." 
 
한 번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판까지 갔으나 패소했던 불복 사건을 맡게 됐다. 의뢰인이 10년 전 A은행에서 빌린 돈을 공장을 짓는데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하는데 이미 A은행은 B은행에게, 또 B은행은 C은행에게 인수합병되면서 당시 자료를 찾는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 돼버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원 세무사는 C은행에서 B은행 인수 당시 받았던 자료를 찾아 내고, B은행에서 A은행의 자료를 찾는 방식으로 일일이 역추적해 결국 A은행에서의 거래 기록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결과는 고등법원에서의 승소라는 '기쁨'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원 세무사가 받은 수임료는 고작 '상품권 2장'이었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서 지역사회에서의 세무사 원경희에 대한 평판은 상승그래프를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여주가 농촌 지역이다 보니 토지 거래에 관련한 상담도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미리 거래 증빙 자료를 챙겨 두지 않고 고지서가 나온 후에야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단 저를 찾아오시면 앞으로는 거래 후 최소한 3년은 자료를 챙겨 두시라고 누누이 설명을 드립니다."

원 세무사는 이렇듯 지방에서의 상담은 까다롭고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지역민들의 세금에 대한 인식이 점점 나아지고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 세무사회 부회장…남다른 열정과 헌신으로
 
원경희 세무사는 개업 7년 만에 세무사회 부회장, 세무학회 부학회장을 맡을 정도로 왕성한 대외활동을 펼쳐왔다. 
 
"개업한지는 얼마 안됐지만 2003년에 세무사회장 후보자의 러닝메이트인 부회장 후보로 제안을 받아 참여하게 됐지요. 당선 후에는 세무사회 임원이 월급을 받는 일도 아닌데 2년 동안 매일 출근하면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원세무사는 당시 국세청에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세무사회 발전을 위해 일하면서 공적 영역에서의 봉사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임기에 변호사와 공인회계사가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무사법을 개정해 세무사의 위상을 찾은 일에 대해 큰 보람을 느꼈다. 
 
당시 회장으로 함께 일했던 정구정 세무사가 올해 다시 세무사회장으로 당선돼 지난 2일 취임식을 가졌다.

원 세무사는 이제는 세무사회 임원직은 다른 분들에게 양보하고 자격사로서 받은 사회적 혜택을 최대한 환원하면서 자격사로서의 좀 더 나은 가치 실현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 아버지와 딸이 함께 일하는 따뜻하고 향기나는 '일터'
 
역삼동 조은세무법인 본점을 찾으면 청초한 미녀 세무사에게 세무상담을 받을 수 있다. 나이는 많지 않지만 벌써 4년차 세무사의 반열에 들어선 44기 원혜진 세무사.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세무공무원으로, 세무사로 일해오는 것을 보면서 젊은 세대들은 으레 어렵고 멀게 느끼는 세금에 대해 친근감을 갖게 됐다. 세무사 공부도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법전을 뒤지는 것에 재미를 붙인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한 장단점을 물었다.
 
"여주 지점에서 일할 때부터 아버지가 곁에 계시니까 어려운 부분을 많이 배울 수 있어 좋았습니다. 덕분에 자문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은 동기 세무사들도 제게 전화해서 아버지의 의견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러나 한없이 자애로워 보이는 원 세무사의 교육 방식은 다정하지만은 않다고 마음 한 켠에 밀쳐 놓았던 속내를 털어놨다.
 
"친구들은 '아버지가 대표이시니 피곤하면 일찍 퇴근하기도 하고 편하겠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집에 가면 아버지가 계시니까 오히려 일찍 못 가고 더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일한 적이 많습니다."
 
이런 딸의 귀여운 투정에 원 세무사는 '너털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본인이 밤 11시, 12시까지 스스로 공부하고 일을 찾아서 배우려고 하는 열정이 강했습니다. 당연히 다른 분들보다 한 발 빠르게 발전해 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라며 딸을 살짝 비행기에 태웠다. 
 
원혜진 세무사는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가르쳐 주시는 스타일은 아니세요. 항상 스스로 해결해 봐라 하시고, 케이스를 먼저 분석해서 신고서류를 작성해 가면 그제서야 빨간 펜으로 잔뜩 수정해 주십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내공이 쌓이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고기를 잡아 주기보다 고기잡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 방식. 이런 교육 속에서 원혜진 세무사는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결혼 후에는 여주에서 본점으로 자리를 옮겨 세무전문가로서의 위치를 굳힐 수 있었다. 
 
□ 진심과 감동이 있는…베풀 줄 아는 세무사
 
원경희 세무사의 '세무사로서의 철학'은 무엇일까.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일처럼 해결해 주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감동이 전해지나 봅니다. IMF때의 일입니다. 사업이 어려워져서 적자로 힘겹게 정리하는 분들에게 나중에 잘못된 세금으로 고생하지 않도록 내 일처럼 세세히 알려드렸더니, 10년이 지난 요즘에 다시 사업을 시작하셨다고 전화가 오곤 합니다."
 
어렵고 힘들 때의 도움은 반드시 기억에 남아 당장의 이익보다 더 큰 결과로 돌아오게 된다고 말하는 원 세무사. 그 만큼 신뢰와 진심으로 고객을 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세무사는 자격사로서 일종의 '사회적 특혜'를 받은 셈입니다. 따라서 사회를 위한 적절한 봉사와 환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혜를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사용할 것이 아니라 타인도 돌볼 수 있는 가슴이 따뜻한 전문가가 되었으면 합니다."

"후배들에게도 도움을 받기 보다 먼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조언합니다."
 
원 세무사는 교회에서의 장로 활동 뿐 아니라, 와이즈맨 등의 단체 활동, 지역의 각종 봉사 활동에도 열심이다.

한국세무학회 부학회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여주지역동문회장, 여주대학 겸임교수, 한국세무사회 전국부회장,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총동문회장, 여주포럼 상임대표, 여주군양우연합회 회장, 한반도대운하물길연구회 공동대표, 여주군기독연합회 장학위원장, 국제와이즈맨 여주클럽회장,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총동문회 명예회장 등.
 
원 세무사가 1996년 개업후 지난 2010년까지 활발히 사회활동에 참여해온 증표들이다. 지난 2000년 7월에는 '신지식인 세무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 끊임없는 열정과 도전 그리고 쓰고 싶은 새로운 역사
 
공직에서 국민을 위해 20년, 세무사로서 납세자를 위해 15년을 일해온 원경희 세무사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조은세무법인의 여주 지점을 앞으로 지역 세무사 사무소의 본보기가 되도록 더욱 키워나갈 계획입니다."
 
원 세무사는 지난 2010년, 여주 군수(미래연합 후보)에 출마해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는 여주의 낙후된 현실을 개선해야 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아마 다음 총선이나 지방선거에도 다시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국세공무원으로, 세무법인의 CEO로서 제가 그동안 쌓아온 역량을 여주 지역의 발전에 집중해서 여주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후배 국세공무원, 후배 세무사들, 고향 여주의 선후배, 지역민들에게 한치도 부끄럽지 않은, 나아가 자격사로서의 욕심보다는 사회를 위해 베풀줄 아는 자격사인 '세무사'가 되고 싶습니다." 

세금에 대한, 여주에 대한 그의 뚜렷한 진심(眞心)이 읽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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