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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조세일보 선정 '명품(名品)' 세무사]

'파워풀한 여성 캡틴' 유재선 세무사

  • 보도 : 2011.04.18 10:27
  • 수정 : 2011.04.18 11:38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영원한 캡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는 거스 히딩크 감독에 의해 발탁되기 전에는 그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이렇다 할 실력도,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이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매일 연습에 매진했다. 언젠가 자신에게 찾아올 꿈의 순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순간이 찾아왔을 땐 여지없이 그동안 갈고 닦아온 기량들을 마음껏 펼쳐 보였다.

이런 그에게 사람들은 기꺼이 '영웅'이라는 칭호를 선사했다.

세무사들 중에도 박지성 선수와 닮은꼴인 이들이 있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무명의 터널을 빠져나와 마침내 명품세무사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국세무사회 부회장인 유재선 세무사는 그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 둥지에서 세상으로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난 유재선 세무사는 부산진여상, 경성대를 차례로 졸업했다. 그리고 1984년부터 14년간 부산 등지에서 국세공무원으로 일했다.

남들이 보기에 그는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별 걱정이 없는 듯 보였지만 정작 유 세무사 본인은 국세청 생활에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당시 여직원에게는 조사나 법인 등 주요 업무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보조 업무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거죠. '똑같이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됐는데 업무가 구분된다?'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반복된 단순 업무에 싫증을 느낀 유 세무사는 결국 사표를 제출하기로 결심했다. 결혼하기 전의 일이었다. 그렇지만 쉽게 국세공무원의 직분을 포기하지는 못했다. 7남매의 맏이로, 가난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어야 했던 까닭이다.

그렇게 국세청에 머무는 동안 행정고시를 통해 노동부사무관으로 임관한 동기동창을 만나 결혼도 하였고 2세도 낳았다. 이쯤되면 현실에 안주하며 살만도 한데 유 세무사의 가슴에 꿈틀거리는, 또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항해'의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고대하던 때가 찾아왔다. 1996년 1월 둘째 아이를 출산한 유 세무사의 눈에 세무사시험 공고가 들어왔다. 불과 6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시험 공고에 유 세무사의 가슴은 뛰었고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쳐 올랐다.

바로 육아휴직을 하고 세무사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고배를 마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낙담하지 않았다. 아니 오랜만에 해본 공부에 신바람이 났다. 그는 이듬해에도 시험에 도전을 했고, 결국 합격증을 받아 들었다.

□ 고객과 함께 발로 뛴 여성 개척자

그는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직후 국세청을 떠났다. 그리고 1998년 경기도 수원에 '세무사 유재선사무소'를 열었다. 직원은 단 두명. 퇴직금 3700만원과 약간의 대출금이 밑천의 전부인 이 사무소가 얼마나 갈지 당시로선 미지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성공시킬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고 유 세무사에게 개인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끌 만한 특별한 '비결'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굳이 따지고 보면 그에게는 성공보다 실패의 가능성이 월등히 많았다.

"국세청에 14년 있었는데 그중 10년을 총무 파트에서 있었죠. 그래서 정말 아는 것이 없었어요. 그나마 저와 가깝게 지내던 세무공무원들이 좀 도와주면 나았을텐데 당시엔 그런 걸 전혀 몰랐습니다. 게다가 객지에서 있었기 때문에…."

유 세무사의 당시 영업방식은 매우 독특했다. 먼저 영업을 위해 유 세무사는 인근의 생활정보 신문을 수집했다. 거기서 상가임대 광고를 체크한 그는 광고주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임차인이 들어오면 사업자등록을 해주겠다"고 자청했다.

또한 길거리를 다니다 수리중인 점포를 발견하면 즉시 들어가 명함을 건네준 다음 "세무와 관련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해달라"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 덕분에 지역민들의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어떤 이들은 전화를 통해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또 다른 이들은 유 세무사의 사무소를 직접 방문해 궁금증을 풀어 놓았다.

그러나 유세무사는 자신을 찾는 납세자들이 하나둘 늘어남에 따라 두려움을 느꼈다. '과연 이 납세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멈칫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유 세무사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젊은시절 고생을 하며 다져온 '담대함'이 그를 붙잡아 줬다. 이후 유 세무사의 업무는 수월하게 풀려나갔다.

당시 햇병아리 세무사의 곁엔 영세 상인들로 가득했으나, 유 세무사는 이들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면서 성심성의껏 대했다. 무엇보다 즉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오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서라도 알려주는 성실함을 보여줬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 것뿐인데 그것이 어필 했나 봅니다. 어쨌든 사무소를 연지 1년이 안돼 자리가 잡혔어요. 더 기분좋은 건 폐업을 한 경우를 제외하고 처음 인연을 맺은 분들이 우리와 함께 성장해왔다는 점입니다."

□ 여성의 장점 승화…'디테일의 미학'

올해로 개업 14년째를 맞은 유 세무사는 현재 '세무법인 부강'을 이끌고 있다. 직원 2명으로 시작한 조그마한 사무실을 임직원 50여명의 세무법인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납세자를 위한 헌신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한 일이었을 터.

그는 이처럼 세무대리 업계를 종횡무진 누비는 동안 다양한 일들을 겪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그중에서도 유 세무사는 "납세자에게 불합리한 중과세 처분을 꼼꼼히 살펴 해결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부모에게서 상속받은 토지를 처분했음에도 '비사업용 토지'라는 판정을 받아 매매금액의 50%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게 된 납세자를 도와 중과세를 면하게 해준 일 등이 지금껏 했던 일들 중에서 가장 보람됐다고 밝히고 있는 것.

물론 그에겐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비영리법인의 고유목적 사업용 부동산 처분과 관련, 그는 과세관청과의 다툼 끝에 "사용 기산일은 실제 사용일"이라는 답을 받았다. 그런데 이후에 확인해본 결과 관련 예규는 진작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좀더 꼼꼼히 예규를 찾지 않은 탓에 괜한 다툼이 벌어진 경우다.

□ 여성세무사들의 든든한 '맏언니'

오랫동안 쉼없이 달려왔지만 유 세무사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여성 세무사들의 맏언니로서 이들이 전문성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돕는 게 그 첫 번째다.

"여성 세무사들은 원칙대로만 일을 처리한다는 인식이 업계에 있어요. 그래서 남성 세무사를 선호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여성들에겐 치밀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항상 자신감을 갖고 일하라고 조언합니다."

유 세무사의 두 번째 소망은 세무사들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것이다.

세무사회 내에서 국제통인 그는 이미 주한미국상공회의소와 주한유럽상공회의소에 회원으로 가입, 국내 세무조사에 대한 강연회를 실시하는 등 한국세무사회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는 능통한 그의 영어 실력이 한몫을 했다.

또한 독일의 연방 세무사회를 방문, 전산법인 다테브(DATEV)와의 업무협약도 이끌어냈다. 세무사회 국제·홍보 부회장으로서 일본·중국에 국한돼있던 국제교류의 장을 독일, 몽골, 미국, 홍콩 등으로 다변화한 것도 유 세무사의 업적에 속한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2012년 아시아·오세아니아 세무대리인협회(AOTCA) 총회와 월드 택스 컨퍼런스(World Tax Conference)를 서울로 유치하기도 했다. 동시에 한국여성 최초 AOTCA 감사로 선출되는 영광도 함께 누렸다.

이밖에 그는 조세제도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세무학회 부회장 직을 맡아 세무사회의 입장이 조세제도 개선에 반영되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이처럼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무사들의 위상을 제고시키기 위해 해야할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세무사회 본회 차원의 국제교류를 더욱 늘리고, 높아진 위상으로 세무사들의 활동 영역을 확대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독일 세무사회 총회에 갔는데, 연방 재무장관이 나와 있더군요. 행사에서 연방 재무장관은 독일 세무사회가 낸 세법개정안이 부결됐다며 통과된 세법 조문을 하나씩 설명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도 저런 앞서가는 조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유 세무사는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활동 무대를 중앙으로 옮겼다. 서울에 세무법인을 만들어 업계 전체를 위한 활동에 나선 것. 이와 관련해 그는 "역량부족 때문인지 하려는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 때론 엄마같이...때로는 언니같이

유 세무사의 얼굴에서는 '불안함'이나 '조급함' 등은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겐 굳은 목표와 이를 달성하는 과정에 함께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직원들이 있기에 '나는 복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요. 제가 세무사회 일을 하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늘 도와주거든요. 제가 개업할 때 함께 출발한 친구가 있는데 아직 자리에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고마울 수밖에 없지요."

유 세무사는 요즘 부강의 직원들과 부쩍 수다를 즐긴다고 했다. 함께 근무하는 해군장교 출신의 남자 세무사가 "이러는 게 좋은 것이냐"고 물을 정도란다. 그는 또 사무실 식구들과 함께 동대문시장 등지로 쇼핑도 다닌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다진 팀워크가 부강의 힘을 더욱 탄탄히 하며, 궁극적으로 세무대리 업계나 납세자 모두에게 두루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다양한 형태의 내부 소통이 납세를 매개로 연결된 모든 사람들의 만족을 높인다고 믿는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들에게 '출발이 늦다거나 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실망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준비하고 있으면 언젠가 기회는 오거든요. 아직 명품으로 불리기엔 부족하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과 함께 저도 '더불어 같이 잘 살자'는 초창기 모토를 되새기며 새롭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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