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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조세일보 선정 '명품(名品)'세무사]

'지식·리더십·봉사' 3박자 갖춘 세무업계 신사(信士)…고지석 세무사

  • 보도 : 2010.11.16 09:43
  • 수정 : 2010.11.16 09:43



방송·대학 강단 누비며 세무지식 전파…세무사고시회 기틀 마련
만학으로 박사 학위 취득…세법으로 사람 돕는 '심사·심판청구' 귀재

고지석 세무사(세무법인 내일 대표세무사, 경영학 박사)는 '지식·리더십·봉사정신'의 3박자를 두루 갖춘 '세무업계의 신사(信士)'로 통한다.

그에게는 이런 유명세를 반영하듯 이름 뒤에 따라 붙는 수식어가 여럿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양도소득세 전산프로그램을 개발한 '컴퓨터도사', 각종 방송과 대학 등에서 정열적으로 세무지식을 알리는 '세법 전도사', 경실련 재정세제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세무인의 사회봉사분야를 개척한 '세무봉사 프론티어'.

이는 그의 다재다능한 기질이 만들어 낸 그만의 훈장들이다.

고 세무사는 "5살 때 트럭에 깔리는 사고로 엑스레이를 찍으면 폐결핵 3기 환자의 모습처럼 폐가 하얗게 나오곤 했는데 부모님의 덕분에 건강을 되찾고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며 "다시 생명을 얻은 것이나 다름 없으니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지식을 널리 전파하며 보람된 생을 살고 싶다"고 전했다.

조세일보가 '세무업계의 신사'로서 명성을 얻고 있는 고지석 세무사를 만나 솔직담백한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 10년간 뛰던 공무원…세무인으로 날다

고 세무사는 지난 1968년 수원세무서를 시작으로 국세청과 인연을 맺고 1979년까지 11년간 공직생활에 몸을 담았다. 

지난 1973년부터 1977년까지 3년간은 국세청의 연합조사반에 차출돼 대기업들을 조사하고, 국세청 엘리트들만 모였다는 외국인세과(국조과 전신)에 근무하며 세계적인 종합무역상사들을 조사하는 등 소위 잘나가던 국세공무원의 길을 걸었다.

고 세무사는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조사나 세무업무에 있어서는 자신감이 붙었다고 회고했다.

연합조사반에 근무중이던 지난 1976년 승진가점을 받기 위해 보았던 세무사시험 합격이 연이 되어 전도양양했던 세무공무원의 길을 접고 세무사의 길을 걷게 됐다.

세무사 개업을 한 뒤 심사·심판청구업무를 똑소리나게 해결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명도를 높여 갔으며, 세무사회의 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제도개선연구위원을 비롯해 본회 상임이사인 업무이사, 총무이사직 등을 수행하는 등 세무사로서의 족적 또한 뚜렷하게 남겼다.

한국세무사고시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당시 친목 단체 위주로 운영되던 이 단체의 기틀을 새롭게 마련한 것도 바로 그다.   

그는 고시회 회장선출 방식에서부터 고시회 강령 제정, 고시회 홈페이지 최초 개설, 사무국 개설준비금 적립 등 그가 회장 때 만들어 놓은 이런 제도들은 그의 분명한 발자취로 남아 있다.

□ 국내 최초 양도소득세 전산프로그램 개발

고 세무사의 끈질긴 집념과 나눔의 성정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지난 90년에 국내 최초로 개발한 '양도소득세 전산프로그램' 개발이다.

남들보다 일찍 컴퓨터를 접하고 또 좋아했던 그는 '전산을 이용해 양도소득세를 쉽게 산출할 수 없을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당시 개발을 진행하게 됐다고 전했다.

당시 양도소득세를 전산처리하기 위해서는 15권이나 되는 방대한 양의 건물기준시가 데이터를 일일이 입력해야 했는데 조세당국도 장시간 작업량에 엄두를 못내고 있던 상황.

하지만 그는 기준시가 데이터를 일일이 입력하는 대신 기준시가 산출방식을 프로그램화하는 아이디어로 16비트의 저사양 컴퓨터로 결국 결실을 이뤘다.

이는 양도세 계산은 3페이지 분량의 기본 원리만 충분히 이해하면 가능하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쾌거였다.

그가 국내 최초로 지난 90년에 개발한 '양도소득세 산출 소프트웨어'는 한국세무사회와 손잡고 회원들에게 저렴하게 공급됐다.

부동산 쪽 회사나 공인중개사협회에서 상당한 금액의 보수를 약속했지만 그에게는 세무업계 종사자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고 한다. 

또 그는 고시회장 당시 '비상장주식평가 엑셀프로그램'CD롬을 세무사회원들과 전국의 일선세무서에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세무사사무실에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서식이나 계약서 등 필요한 서류들을 세무사마다 다시 작성하지 않고 미리 만들어진 서식을 활용하면 업무가 편리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

또 세무서 역시 재산세업무 담당직원들이 사용하면 상속·증여세 업무처리를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공무원들의 업무 편리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 제2의 도약 위해 '세무법인 내일' 설립

고 세무사는 "내 일 네 일이 따로 있을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올해 세무조사대리 및 컨설팅업무는 물론이고 보다 큰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제2의 도약을 꿈꾸기 위해 김용표(前 국세청 징세심사국장), 김정민(前 광주지방국세청장), 최병국(前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서인채(前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남일환(전 한화그룹 임원), 이전자(송파세무서 이의신청심의위원), 나현광(세무사고시) 씨 등과 함께 세무법인 '내일'을 설립했다.

그가 대표세무사로 있는 세무법인 '내일'이 '거래처의 일은 '내 일' 같이 하자', '내일(장래)을 대비하는 세무법인이 되자'라는 뜻에서 지어졌다는 것은 그의 평소 성격에 비춰 볼 때 너무나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 세무봉사분야 개척…방송 통해 세법을 말하다

고 세무사가 한국세무사고시회 임원들을 설득해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문턱을 넘어선 것은 지난 2001년의 일이다.

그가 경실련의 문을 두드린 이유는 당시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들의 활발한 사회참여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 그는 세무사들도 전문지식을 활용해 국민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고 세무사는 경실련 재정세제위원으로서 어려운 세법 지식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일을 전담했다.

지난 1993년 KBS 제1TV '뉴스의 광장'에 세무정보 해설자로 출연해 첫 마이크를 잡은 그는 이후 3개월간 생방송에 출연해 일반 대중에게 세무정보를 알기 쉽게 알렸다.

이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 제1TV), '세상의 아침'(KBS 제2TV) 등에 출연해 '세법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더불어 그는 IMF 직후에 창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창업과 세금' (개정 3판 발행) 등 저술활동을 통해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도 했다. 

고 세무사는 "변호사나 다른 전문직종은 사회봉사활동에 참여가 많은데 비해 세무사의 활동은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세무사가 세무 문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반 대중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는데 당시 고시회 임원 5명을 설득해 함께 경실련에서 활동했던 것이 시발점이었다"고 소회했다.

또 그는 "당시 방송에 출연해 상담을 하게 되면 사전에 답변을 어떤 방향으로 할지 시나리오를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고단한 면이 없지 않았다"며 "하지만 당시의 활동이 세무사로서 긍지와 보람을 갖게 한 소중한 계기도 되었다"고 밝혔다.

□ 끈기와 노력으로 일군 '만학의 꿈'

고 세무사는 지난 8월 경원대학교 대학원에서 '우리나라의 상속세 회피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논문의 주요 내용은 상속세 회피 욕구가 줄지 않고 있는 원인을 상속과세제도 자체의 비합리적인 문제점에 있다고 보고 상속세율 인하, 최대주주의 소유주식 할증평가제도 폐지, 유산취득세 과세방식으로 전환 등의 대안을 제시한 것.

고 세무사가 늦은 나이에 만학도로 박사학위를 받게 된데는 말 못할 사정이 숨겨져 있다.

그가 광주에서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을 당시 아버님의 사업 실패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그의 못다한 학업에 대한 열망은 그를 만학도의 길에 들어서게 했고 오산대학, 경희대 대학원 등을 거쳐 지인들의 격려 속에 끝내 경원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멀어졌던 배움의 길에 어렵게 들어선 만큼 그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 지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매일경제신문에 '창업과 세금'이라는 칼럼을 3개월 동안 60여회 게재한 바 있으며, 이를 계기로 매일경제신문사의 '창업자 과정'을 비롯해 한국재경연구원의 세법실무교육과 부동산경제전문가 과정에서 부동산세법을 강의했다. 또 보훈연수원 생활세법 강사, 초당대학교 겸임교수 등도 역임했다.

현재는 경원대학교 학부에서 회계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동 대학원에서 부동산세법을 강의하는 등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배움의 즐거움’을 알리고 있다.

□ "세법 지식은 사람 돕는 도구"…심사·심판청구의 '귀재'

'活法濟民'. 고 세무사의 사무실 한 켠에는 그의 인생의 지향점을 엿볼 수 있는 고사성어가 액자에 채워져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법을 활용해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는 그의 '삶의 나침반'이기도 하다.

그는 "세금은 법률에 의해 공평하게 내야 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법률에 근거가 불확실한 세금이거나 공평성이 없는 세금은 내지 않도록 납세자를 대신해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주특기는 최고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심사·심판청구 등 불복대리 업무다.

고 세무사는 일단 맡은 사건에 대해서는 아주 끈질기고 집요하게 파고 들어 꼭 해결해 내는 성실함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결정 선례가 없는 어려운 사건들도 심사청구나 심판청구 과정에서 거의 다 인용결정을 받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례로 80년대 중반에 상가를 신축분양하는 한 사업자가 1층만 분양이 되고 나머지는 분양이 잘 안 되어 그 이듬해에 미분양분을 할인해 분양을 하게 됐는데 총체적으로 이익이 거의 없었는데도 세무서에서는 첫 해 분양분에 대한 원가를 총평균법으로 산출해 소득세를 과도하게 추징했다.

이에 고 세무사는 심판청구과정에서 분양가액에 대응되는 원가는 연산품원가계산방법에 따라 분양분에 대한 원가를 분양가액에 비례해 안분계산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펴 심판소에서 인용을 받아냈다. 

이 심판결정이 나온 이후 최근에는 연산품원가 계산방법대로 분양분 원가계산을 하는 것이 일반화됐지만 당시에는 세법에 명확한 규정도 없었던 터라 끈질기게 설득해 심판소에서 어려운 결정을 받아낸 것이다.

고 세무사는 "납세자 본인이 하는 것 보다 더 열심히 연구해 최대한 인용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재 심사청구나 심판청구에서 90% 이상 인용을 받고 있는 비결"이라며 "최소한 납세자들이 세법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세법지식을 통해 사람들을 돕는 것이 저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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