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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조세일보 선정 '명품(名品)' 세무사]

'절세의 달인'으로 통하는 불복업무의 '거장(巨匠)'…유영경 세무사

  • 보도 : 2010.09.02 08:00
  • 수정 : 2010.09.02 08:00



"부당하고 억울하다면 바로잡을 길 있다"는 신념과 능력 겸비
한우(韓友)세무법인, 원스톱 토탈서비스로 "제2의 도약" 준비중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납세의무를 이행한다. 그러나 번 만큼 세금을 내는 '응능 부담의 원칙'을 지키는 성실한 납세의무의 이행은 그리 간단치 않다. 세금의 과다 여부나, 몰라서 더 내고 있는 세금은 없는지 따져 보기란 전문가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아무리 공평과세를 한다고 해도 세금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꼭 생겨난다는 사실.

이런 상황에 처한 납세자는 이를 원만하게 풀어줄 최고의 전문가를 찾게된다. 이처럼 어려움에 빠진 납세자가 망설임 없이 떠올리는 사람, 바로 '절세의 달인'으로 불리는 유영경 세무사다.

올해로 세무사 개업 30년을 맞이한 그가 세금과 인연을 맺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농촌지도소→군청→우체국→동사무소→세무서→국세청까지…"집념의 인생"
 
전남 광양 출신으로 유년시절 제법 수재였던 유 세무사는 호남의 명문 순천 농림고를 수석(학비전액면제)으로 진학했다. 고교 졸업때 쯤 그는 심훈의 상록수에 심취해 고향의 농촌지도소에서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다.

농촌운동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몸소 체험한 후 고교시절 전공(林科) 덕분에 전남 고흥군청 산림보호직으로 근무하며 산림녹화사업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중단했던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서울행을 결심, 답십리 우체국으로 직장을 옮겼다.

체신업무에 몸 담은지 얼마 안 되어 늦은 나이에 군에 입소했으나 고령자라는 이유로 3일만에 귀가조치 됐다. 3일간의 병영생활(?)을 마치고 이름(영경·永京)처럼 서울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서울시 공무원시험에 도전했고, 합격증을 받아 성북구 정화동사무소와 종로구 운니동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낙원동 소재 건국대 야간 대학 행정학과에 입학, 학구열을 불태우면서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이때 그는 또 지방공무원 보다는 국가공무원으로서 국가에 이바지하는 길을 택하기로 결심, 세무공무원의 기초가 되는 회계와 부기공부를 시작해 재정·세무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국세청과 인연을 맺게되었다. 그의 첫 세무서 발령지(68년 8월)는 순천세무서.

40년이 흐른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강 계장님. 그분 밑에서 분만수술용 고무장갑 사용숫자로 산부인과에 대한 세무조사 기법을, 순천역의 수산물 물동량이나 꼬막양식장 면적으로 수입금액을 계산할 수 있는 '비법'을 전수 받은 것은 큰 행운이었다.

청년 유영경은 2년 후 서울의 대표적 세무서였던 명동성당 앞 을지로 세무서로 전근발령을 받았다.

1965년 농촌지도소를 통해 공직에 처음 발을 들여놨고, 그 후로 여러 기관을 두루 거치면서 다양한 공직을 경험한 후 국세청에 정착한 그는 첫 근무지 순천에서 상속·증여세와 의료업관련 제세, 그리고 개인·영업세 등을 두루 섭렵했다면 을지로세무서에서는 회사정리법 업무를 맡아 법원과 검찰을 드나들며 세법에도 눈뜨게 되었다.

특히 관내 을지로 지역에 즐비했던 증권회사 덕분에 법인세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고, 간세과 근무시절에는 중부지방국세청 소비세 조사팀에 파견되어 대형 음료회사의 세무조사에 투입돼 세무조사를 벌이던 일은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후 그는 중부지방국세청 조사과에서 조사와 심사업무를 함께하는 자리에 가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무엇보다 '조사와 심사'라는 서로 상반된 분야를 모두 경험하며 세무대리인으로서의 최고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심사·심판청구 등 불복대리 업무에 필요한 법률적 지식과 지혜를 깊숙히 익히게 되는 남다른 행운을 얻게 된 셈이다.

"거기서 이의신청을 하고 조세소송도 담당했지요. 정말로 많은 걸 법정에서 배웠습니다. 특히 공격(조사)과 방어(심사)를 모두 해본 덕분에 상당히 풀기 어려운 문제들도 풀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그런 경륜들이 불복대리(이의신청·심사·심판청구) 전문 세무사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이어졌고, 1980년 10월 세무사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 유 세무사의 나이는 30대 후반. 젊은 혈기로 개업의 길을 택했으나 당장 앞길이 캄캄했다. 하지만 어두운 터널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평소 존경하던 한 선배의 도움으로 세무사로서 첫 불복업무를 수행해 부과세액의 90%를 감액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불복청구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 무엇보다 큰 재산이었다.

이후 유 세무사는 감사원의 시정명령으로 부과된 세금조차 국세청 심사청구 단계에서 바로잡아 내면서 업계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국세청 심사과 직원들도 유 세무사의 실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 유 세무사는 이미 세무사업계에서는 '최고'라는 명성과 함께 수익도 꽤 많았다. 세무사들 중 납세실적이 랭킹 5위안에 들었고 국세청이 발표한 고소득자 명단에 포함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납세자 권익위해 '광야'로…"성실납세자가 존중받아야 진정한 복지·민주사회"

유 세무사는 세무서 근무시절 세무조사를 나갔다가 세무사시험 공부를 하던 직원을 만나 '나도 자격증을 받는 공부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세무사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 국세청에는 세무사 자격을 보유하면 승진 심사시 가점을 준다는 규정이 있었다는 점도 세무사시험에 도전할 동기부여는 충분했다.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78년 세무사시험에 합격했다. 남산세무서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합격후 두 해를 보내고 유 세무사는 자신을 보호해주던 국세청의 울타리를 벗어났다.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광야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서울 을지로6가 국립의료원 옆에서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 한 이후 유 세무사는 조세에 대한 자신의 기본 철학을 구현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성실납세자가 존경받는 사회가 진정한 복지 민주사회'라는게 그의 소신이다.

재경부 세제발전심의위원과 기독교 방송 해설위원 등 활발한 대외활동 속에서 그의 주장은 항상 "성실납세자가 존경받는 납세풍토 마련"에 방점이 찍혀있다.

이에 따라 그의 세무사로서의 역할 또한 언제나 억울한 납세자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는 즉 성실한 납세자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데 집중됐다.

성실하게 세금을 내온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앞장서 해결하는데 온 정열을 쏟아온 것이다. 그것이 곧 성실한 납세분위기를 발전시키고, 나아가 국세행정에도 이익이 된다는 지론을 실천하는 길이기도 했다.

■ "억울합니까" 질문에 "그렇다"고 해야 수임…해결될 때까지 '절대 집념'

물론 자신을 찾아온 모든 이들을 위해 일한 것은 아니다. "억울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하는 고객들을 위주로 정말 억울한지 여부를 판단해 일해 온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건을 맡은 뒤에는 억울한 사람 구제에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납세자 본인보다 사건을 더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아마도 돈을 벌려고 했다면 일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물론 정말 억울한 납세자는 나에게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치밀하게 일을 해나갔다.

사무실에 앉아서 서류와의 싸움은 밤에 했고, 낮에는 증거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현장을 누비고 또 누볐다고 한다. 억울한 납세자의 일이 내 자신의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일념으로 일에 매달려 왔다고 감히 말 할 수 있다고 했다.

#기억 1…'법원판례·심판원 결정' 바로잡은 사건
100여평 남짓한 텃밭 수준의 땅 경작 사실을 근로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자경 농지감면 혜택을 받지못해 상당한 양도소득세가 부과된 사건이다.

조세심판원과 법원 모두 '전업농' 이라는 잣대로 비슷한 사건을 대부분 기각처리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납세자의 억울함을 결코 쉽게 풀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간파하고 있었던 유 세무사는 사건의 핵심은 세법보다 세무행정에 있다고 판단, 과세전적부심 절차를 밟았다. 납세자의 집과 사무실, 그리고 종묘상 등을 백방으로 누비고 다니는 노력으로 '8년자경'을 증명해 냈고, 양도소득세를 감면 받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선결정례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기억 2…풀기 쉽지 않은 매출누락 사건
은행에서 융자를 받기위해 제출한 세금계산서 때문에 납품도 안된 물건에 세금을 내게 된 납세자를 구제해 준 일도 기억속에 생생하다. 결코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매출누락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거래처가 융자용으로 발행한 세금계산서로 매입세액공제를 받은 후 잠적하여 몇 년이 지난시점에 추징이 되었다.
 
이 사업자는 해당 세금 계산서로 매입세액공제를 받은 후 사업부진으로 잠적했고, 사건 자체도 오랜 세월이 지났기에 해결이 난망했다. 결국 해당 세금 계산서의 제품이 거래처의 공장에 그만한 제조 시설이 들어갈 수 없음을 관할 지자체에 제출되어 있는 시설도면을 찾아내 입증자료로 활용하여 문제를 풀어냈다. 정말 뿌듯했다고 한다.

#기억 3… 조세심판원을 설득, '유일하게 인용'받은 사건
지난 2003년 이후 세무전문가들은 물론 선량한 상속·증여자들을 비현실적으로 옭아매오고 있는 유사매매사례가액 관련 사건에서 인용결정을 이끌어 낸 것은 유 세무사의 공직에서 얻은 노하우와 집념의 결정체였다.

20년이상 살던 노후 아파트를 상속 받은 후 상속세를 기준시가로 신고했으나 부인당하고 유사매매사례가액으로 추징당한 사건.

조세심판원의 담당 조사관에게 직접 현장조사까지 나서게 한 끝에 인용결정을 이끌어 낸 것으로 유사매매사례가액 사건으로는 유일하게 인용 받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유 세무사 자신이 사건 해결의 핵심을 제대로 찾아내 해결한 사건은 수없이 많다. 유 세무사의 이런 열정은 국세 뿐 아니라 지방세 분야에서도 발휘돼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포스코의 지방세 중과세 건을 대리해 인용결정을 받아 냈을때도 보람이 컸다고 회고했다.

"자신을 찾는 납세자의 얘기를 듣거나 관련 문서를 보며 문제해결의 방법을 바로 찾아내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반대로 문제해결을 위해 수 개월간 노력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게 유 세무사의 귀띔이다.

유 세무사는 "포기라는 말을 잊고 납세자의 권익을 지켜내 오는데 젊음을 바쳐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그의 포기하지 않는 '절대 집념' 덕분에 지금도 그를 찾는 이들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다른 전문가들을 통해 문제를 풀려다 결국 실패한 납세자들이 많다고도 살짝 전했다. 최후의 희망으로 유 세무사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이름난 법무법인과 일을 하다가 중도에 어려움에 이르면 유 세무사를 찾아와 해결하는 경우도 상당건 있다고 한다.



■ "세무사에게 납세자의 일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한우세무법인, 명품 '원스톱 토탈서비스'로 진화중

지난 30년간 흘린 소중한 땀방울은 그가 대표세무사로 있는 '한우세무법인'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법인명 한우(韓友)는 "이 나라 모든 납세자가 사랑하는  벗"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유영경 세무사의 호 이기도 하다.

초창기 단출했던 한우세무법인의 살림은 서울 서초동 본점 외 다섯개의 지점을 거느릴 정도로 커졌다. 여느 세무법인과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유 세무사는 양적 성장에 만족하지 않는다. 성장을 하되 내실이 없다면 결국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개념을 도입, 본점은 불복업무를, 지점에서는 기장대리 등을 처리하도록 함으로써 한우세무법인의 세무업무 순도를 '골드바' 수준으로 성숙시켜 놓았다.

아울러 그 자신은 맡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빈틈은 없었는지 꼼꼼히 살피면서 '마에스트로(巨匠)'처럼 세무법인 전체를 지휘하는 체제를 갖춰놓았다.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간섭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조그만 방심도 허용해서는 안 되겠기에 직접 나선답니다."

유 세무사는 수년 전부터 세무는 물론, 회계·법무·경영 부문의 컨설팅을 한번에 제공하는 이른바 원스톱 토탈서비스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노령화사회에 대비해 상속·증여 및 양도 자산관리, 종합부동산세 관련 업무에 주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재산세제는 전문가와 상의할 경우 그만큼 많은 절세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주력해온 불복청구 외 이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있지요. 물론 관록있는 베테랑급 세무와 재무 전문가를 영입하는 일에도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타고난 성실성과 집념을 바탕으로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서 최고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또한 여전히 성장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지만 그는 '명의 허준이 환자를 대할 때 보여준 열정을 갖고 일하자'는 초심을 잃지 않으며 전진하고 싶단다.

무엇보다 그는 "지난 30년동안 세무대리 업계에서 일하며 정말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며 "이제는 내가 갖고 있는 조그만 능력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로 사회공헌에 대한 의지도 나타냈다.

■ 소리없는 나눔…비료싣고 남포항으로

항상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익숙한 그는 이미 이웃들을 위한 나눔을 소리없이 실천하고 있다.

1978년 동국대에서 석사학위(중소기업 조세지원제도)를, 2004년 경원대에서 박사학위(지식자산의 공시에 관한 연구)를 받은 유 세무사가 각종 언론매체의 자문위원과 경원대학교 회계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그간 축적해온 세무지식을 널리 공유하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포스코와 서울대 치의학대학원을 오가며 인도 오리사주 지역 구순구개열(언청이) 환자에 대한 무료시술을 주선하거나,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동포들을 돕기 위해 직접 울산에서 비료를 싣고 북한 남포항으로 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혜택을 받은 만큼 사회에 공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수입이 많은 자가 세금을 많이 납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단하지도 않은 일들을 지면에서 너무 크게 부각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인터뷰 말미,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노트북을 전원을 누르는 기자를 붙잡았다. '상속세 누진세액 공제' 제도를 신설해야 한다고 목소리의 톤을 높였다. 20여년 전부터 청와대 재경부, 국회 등 정부 측에 기회있을 때마다 건의를 해온 것이라고 했다.

생전 부모님의 소득세 등을 부모님 사후 상속세를 내야하는 자식들에게 누진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자는 것으로 부모는 성실납세를, 자녀는 상속세 절감이라는 수혜를 얻게돼 부자들의 성실납세의식 고취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

그의 이런 '보석'같은 고견들이 언제쯤 현실화 될지 궁금해진다.

세무대리 업무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애정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유영경 세무사의 모습은 아름다운 '명품세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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