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 대면 선행사례(Leading Case)…납세자 권익보호 앞장
중복조사에 '경종'…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성도 인정받아
법무법인 율촌 조세그룹은 지난 1997년 설립이후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조세분야에서만 2000건이 넘는 소송을 수행, 2009년 상반기 70%가 넘는 승소율을 보이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승소율이 높다고만 해서 율촌 조세그룹이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승소한 사건 가운데는 서슬퍼런 군사정권과 맞서 납세자 권익을 보호했거나,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유권해석을 뒤집어 놓는 경우도 많았다.
또 상장조건을 이행하지 않아 재평가가 취소된 경우의 법인세문제와 주식예탁증서에 대한 증권거래세 과세문제 등 선행사례(leading case)에 해당하는 판결을 유도, 같은 케이스의 수많은 납세자들이 덩달아 혜택을 보게 한 사례들도 율촌 조세그룹의 이름을 높였다.
■ 출발부터 '싹수' 보였다…손만 대면 '승소'
법무법인 율촌이 조세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자랑하게 된 것은 조세그룹으로 조직이 분화되기 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지난 1992년 말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대권에 도전했던 故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 대한 정치권의 바람은 거셌다.
정 회장이 정치가로 변신해 대권을 꿈꾸던 1991년 국세청은 정 회장의 현대그룹에 대해 이례적으로 1년 가까운 기간동안의 고강도 세무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사상 유례없는 1000억 원 대의 법인세를 부과했다. 국세청 세무조사는 감사원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국세청이 이같은 금액의 세금폭탄을 투하했던 것은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해상화재보험의 기업공개와 관련된 것이었다. 소유주 일가가 기업공개 1년을 앞두고 주식을 친족간에 분산한 다음 이른바 물타기 증자, 계열사 사이의 불균일 합병 등의 방법 등으로 실질적으로 자산을 이전한 것이 문제가 됐다.
현대그룹은 기업공개가 예정된 현대해상화재보험의 발행주식 490만주를 특수관계자에게 주당 1만원에 양도하고 1년 뒤 기업공개 땐 주당 2만6000원으로 공모가액을 책정, 그 차액 1만6000원에 대해 주식저가양도에 의한 이익분여행위로 1000억원대의 법인세를 과세했던 것.
현대그룹에 대한 이같은 국세청의 과세는 누가 보더라도 정치적 배경이 짙게 깔려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변호사도 이 사건을 선뜻 맡겠다고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 당시만 해도 서슬퍼런 국세청에 맞서 변론을 한다는 것은 무모하다고까지 인식되던 때였다.
게다가 당시 보수적인 법조계의 상황을 감안하면 1000억원이 넘는 거액의 세금부과에 대한 재판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만 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인 1000억원대 세금문제를 풀기 위해선 정 회장이 대선에 당선돼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고, 정 회장은 당선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게 된 우창록 변호사(현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는 거대한 정치권력 앞에 맞선다.
우 변호사는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재판과정에서 "기업이 특수관계자에게 보유주식을 양도한 후 합병이 이뤄져 특수관계자에게 경제적 이득이 돌아갔더라도, 주식양도 당시는 장래의 기대이익이 불확실하거나 미확정적이다"는 논리를 폈다.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의 보장을 중핵으로 하는 조세법률주의의 원칙에 비춰 기업이 특수관계자에게 보유주식을 양도한 행위가 저가양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양도 이후 일어난 합병 등 일련의 행위는 별개의 행위인 만큼 이익분여로 볼 수 없다는 것.
또 국세청 과세의 근거가 된 주가는 특수관계자에게 주식을 양도한 때와 상당한 시차를 둔 1년 뒤 가격이어서 주식의 시가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논리도 폈다.
결국 대법원은 "국세청의 과세가 세법 규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한 우 변호사의 논리를 받아들였고, 1000억원대 법인세 전액을 취소하는 원고 전부승소 판결을 내린다.
이 사건은 재벌그룹의 2세 승계과정에 나타난 막대한 부의 이전에 대한 과세의 필요성과 조세법규의 엄격해석의 원칙,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한다는 조세법률주의 원리가 충돌하는 전형적인 예로서 학계에까지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후 우 변호사는 현대산업개발 등을 대리해 토지초과이득세에 관한 50여개의 소송에서 전부 승소하는 또 다른 괴력을 발휘하는 등 조세사건에 손만 대면 승소, 율촌 조세그룹 설립의 초석을 마련했다.
■ 신화(神話)에 가까운 승소사건
▲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성을 인정받다
지난 2006년 4월 20일 대법원은 "소득금액변동통지는 원천징수의무자인 법인의 납세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과세관청의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조세행정처분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선고 2002두1878)을 내놨다.
이 판결은 대법원이 "소득금액변동통지는 원천징수 소득세에 대해 지급시기를 의제해 과세관청이 징수처분에 나아가기 위한 절차적 요건을 규정한 것일 뿐,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독립된 행정처분으로 볼 수 없다"며 22년 동안 유지했던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소득금액변동통지는 국세청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매출누락 등을 발견하고 소득처분을 통해 '대표자 상여' 등으로 귀속자를 가려낸 뒤 원천징수의무자인 회사에 소득금액의 변동사실을 통보하는 것.
이에 따라 이 판결이 있기 전까지 국세청의 소득금액변동통지에 따라 원천세액을 납부한 납세자들은 국세청 과세가 억울해 소득금액변동통지취소소송을 내려고 해도 요건미달에 따른 '각하'처분으로 법원 문턱을 넘는 일이 불가능했다.
22년 유지한 대법원의 입장을 바꿔놓은 소순무 율촌 조세그룹장은 "이 판결이 있기 전 납세자들은 억울해도 '부당이득반환청구'라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민사사건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 판결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측면에서 크게 환영할 판결"이라고 회고했다.
▲ 중복세무조사는 위법…무분별한 세무조사에 제동
지난 2006년 6월 대법원은 "국세청이 조세탈루의 혐의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자료 없이 같은 과세기간 동안 같은 세목에 대해 실시한 중복세무조사는 위법하다"며 "중복조사로 인해 부과된 세금을 취소하라"고 판결(대법원 2006. 6. 2. 선고2004두12070)했다.
대법원의 이 판결은 국세청이 규정을 위반한 중복세무조사를 통해 취득한 과세자료로는 과세할 수 없을 뿐더러, 과세관청의 부당한 중복세무조사로 인한 과세에 대해 납세자들은 소송으로 대항할 길이 생겨나게 됐다는 획기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같은 세목 및 같은 과세기간에 대해 다시 세무조사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한 국세기본법의 중복세무조사 금지규정은 훈시규정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강행규정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학계나 실무계에서 조차 분명한 입장이 없어 실무에서의 적잖은 혼선이 초래되고 있던 때였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국세기본법의 중복조사금지 규정은 단순한 훈시규정이 아니라, 과세관청을 실질적으로 구속하는 강행규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당시 대법원의 판결은 주목을 받았다.
이 사건을 승소로 이끈 소순무 율촌 조세그룹장은 "당시 대법원 판결은 과세관청의 무분별한 세무조사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라며 "대법원이 과세처분의 절차적 통제를 통해 납세자의 권리구제에 앞장서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 주식예탁증서 과세 안된다…재정부 유권해석을 뒤엎다
현행 세법에선 증권거래세의 과세대상을 '주권 또는 지분의 양도'라고 정하고 여기서 말하는 '주권'은 ▲상법 또는 특별한 법률에 의하여 설립된 법인의 주권 ▲외국법인이 발행한 주권 또는 주식예탁증서로서 증권시장에 상장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법 또는 특별한 법률에 의하여 설립된 법인의 주권에는 주식예탁증서도 포함되는 것일까.
이와 관련 기획재정부는 "주식예탁증서는 상법 또는 특별한 법률에 의하여 설립된 법인의 주권에 포함돼 증권거래세의 과세대상 주권에 해당한다"는 입장(유권해석: 재산세제과-255, 2004.02.25)이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007년 5월 "주식예탁증서의 발행 및 보유목적이 실질적으로 주권과 비슷하더라도 상법 또는 특별한 법률에 의하여 설립된 법인의 주권에서 말하는 '주권'에는 '주식예탁증서'를 포함시킬 수 없는 것"이라며 국세청 과세를 취소시켰다.
서울행정법원의 이 판결(서울행법 2007.5.17. 선고 2006구합37301)은 주식예탁증서는 증권거래세 부과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확인했다는 점과 기존 기획재정부의 유권해석을 180도 뒤집은 것이어서 의미가 컸다.
이에 앞서 국세청은 론스타에서 촉발된 외국계펀드의 '먹튀논란'이 거셌던 지난 2005년 某외국은행이 외국계 펀드로부터 국내의 한 은행이 발행한 주식예탁증서를 매수한 것을 '주권 매수'로 간주하고 63억원의 증권거래세를 부과했다.
외국은행이 사들인 주식예탁증서는 국내은행에 대한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주식예탁증서와 다르고, 주권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증권거래세 부과대상이 된다는 것이 당시 국세청의 판단.
이 사건 소송에 나선 율촌 조세그룹은 과세대상 '주권'이 국내법인이 발행한 경우는 상법 또는 특별한 법률에 의하여 설립된 법인의 '주권'으로만 정하고, 외국법인이 발행한 경우는 '주권 또는 주식예탁증서'로 규정한 세법내용에 주목했다.
국세청 과세논리대로 주식예탁증서가 증권거래세 과세대상인 '주권'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라면 굳이 외국법인이 발행한 경우에는 '주권 또는 주식예탁증서'로 병렬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것을 눈여겨보게 된 것.
율촌은 이를 토대로 치밀한 논리를 전개했고 재판부는 결국 "증권거래세와 같은 유통세에 대해서는 과세대상 물건을 엄격히 해석해야 하며, 주식예탁증서 양수 목적이 경영권양수에 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양도에 대한 증권거래세 부과는 위법하다"고 결정했다.
